어린이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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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늙은이’라는 말은 있었으나 ‘어린이’란 말은 없었다. ‘어리다’는 말은 모두 ‘어리석다’는 의미로만 쓰였는데 ‘어리석음’은 ‘어둠’을 의미했고, 그것은 몽매(蒙昧)라는 한어(漢語)로 표기됐다. 이 한어는 본시 ‘주역’의 몽괘(蒙卦)에서 유래됐는데 그 괘사에 동몽(童蒙)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린이는 동몽일 뿐이었으며 그것은 정몽(正蒙)· 격몽(擊蒙)· 훈몽(訓蒙)·계몽(啓蒙)이란 표현이 말해주듯, 때림과 열음의 대상인 암흑이었다.

그러나 20세기의 인류의 역사는 어린이가 어둠에서 밝음으로 걸어나간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구속에서 자유로, 억압에서 해방으로, 타율에서 자율로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초창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1899 ~ 1931) 선생이 ‘늙은이’와 ‘젊은이’의 대등한 개념으로 1920년 ‘어린이’라는 어휘를 창안했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한 말의 늙은이·높은이·착한이라고 하는 낱말들에서 볼수 있듯 ‘이’라는 글자는 높이 일컫는 ‘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린이를 일컫는 말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다. 함경도지방에선 ‘어린아’ ‘얼라’ 등으로,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어린놈’ ‘어린애’ ‘어린애기’ ‘어린앳들’ 등으로 불린다. 이와 동의어로 쓰이는 한자로는 소아(小兒)·유아(幼兒)·해아(孩兒)·동치(童稚)·영해(?孩)·유몽(幼蒙)·황구(黃口)·해제(孩提)·해제지동(孩提之童) 등이 있다.

어린이와 관련된 전래 속담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어린이 관(觀)이 상징적으로 담겼다. ‘어린아이와 술 취한 사람은 바른 말만 한다(순진성과 단순성)’ , ‘어린아이 우물가에 둔 것 같다(미숙함과 위태로움)’, ‘어린아이는 괴는 데로 간다(순응성)’ , ‘애들 보는 데는 찬물도 못 먹는다(호기심과 모방성)’ , ‘어린아이는 기를 탓이다(가소성)’ , ‘어린아이 예뻐말고 겨드랑 밑이나 잡아주랬다(조력지도의 필요성)’ ,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초기 형성의 중요성)’ 는 등 한결같이 어린이를 순진, 단순, 미숙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단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극한 사랑이 담겼다. 이 중 어른들이 깊이 새겨야 할 건 ‘아이들 보는 앞에선 냉수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어린이들이 잘 못 되는 건 기성세대의 언행과 품행을 따라하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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