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벌

만화방창(萬化方暢),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이다. 들과 산, 어딜 가도 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우거진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나들이 하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 볼 수 없는 게 있다. 나비가 안보인다. 벌도 잘 안보인다. 꽃들은 여전한데 꽃을 찾아 날아다녀야 할 나비도 안보이고 벌도 안보인다. ‘나비야 나비야 / 어서 날아 오너라 / 호랑나비 흰나비 너도 어서 오너라’ 동심의 친구였던 나비를 이젠 곤충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어쩌다가 들녘을 날으는 나비를 발견하면 대견한 생각이 들 정도로 귀해졌다. 귀하기는 벌도 마찬가지다.

벌이 꿀을 먹으려고 꽃속에 들어가면 구조적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도록 돼있다. 이윽고 나오려면 잘 빠지지 않아 온 몸을 뒤틀어야 한다. 빠져나오기 위해 몸살을 부리는 과정에서 벌의 몸에 꽃가루가 범벅이 되기 마련이다. 나비 역시 비슷하다. 타화수분을 하는 현화식물의 꽃은 다 이렇게 돼있다. 종족 번식의 본능적 행태인 것이다.

수분은 수꽃술의 꽃가루가 암꽃술의 주두에 붙어 열매를 맺는 현상이다. 수꽃술의 꽃가루를 암꽃술에 옮겨주는 매개로는 바람도 있지만 나비와 벌이 많이 차지했다. 그런데 꽃가루 중매를 하는 벌과 나비가 귀해 수분에 어려움이 많아졌다.

과수농가가 특히 이러하다. 자연수분이 잘 안되다보니 인공수분을 하는 과수농가가 많다. 사람 품을 사서 인력으로 타화수분을 하는 것이다. 자연수분의 수분은 ‘受粉’이고 인공수분의 수분은 ‘授粉’이다. 사람이 일일이 꽃과 나무를 인공수분하자니 자연수분을 해준 벌과 나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던 가를 실감하게 된다.

나비와 벌이 사는 생태계를 사람들이 파괴하기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도심지나 근교의 덤불이 이들의 집이다. 택지 조성이다, 개발이다 하여 덤불이란 덤불은 죄다 불도저 등으로 밀어내니 나비와 벌이 살래야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로 금세기 말에 가면 상당 수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걱정들을 한다. 지구의 온난화도 걱정이지만, 당장에 벌과 나비가 멸종돼가는 것도 큰 걱정이다. 만화방창, 녹음방초의 계절에 나비와 벌을 볼 수 없어 허전하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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