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문화

주도(酒道), 주례(酒禮)는 우리의 전통적 음주문화다. 조선시대엔 동네 노소가 한자리에 앉아 술을 즐기는 ‘향음주례’가 있었다.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주도·주례의 요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酬酌)이다. 잔에 술을 부어 좌중 주객마다 돌리는 행배(行杯)도 있다. ‘술은 권하는 맛으로 마신다’는 술 속담은 술자리의 짙은 정표다. 권주잔은 잔을 비우고 반배(返杯)를 하는 것이 예의다. ‘주불쌍배’라고 했다. 자기 술상 앞에 술잔을 두 잔 이상 두지 않는 것이다.

서울고법이 지나친 권주에 쐐기를 박는 판결을 내렸다. 술을 억지로 권하는 것은 인격권, 행복권 침해라는 것이다. 자율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고, 귀가를 저해하는 것은 행복권 침해라는 것이다. 전에도 예컨대 대학생 동아리에서 신입생에게 억지로 술을 많이 먹여 죽게 만든 불상사가 있긴 있었다. 술을 권해 잔을 받지 않으면 술잔을 머리에 붓는 폐습도 있었다. 더 마실 수 없는 술을 강요받는 것은 분명히 고통이긴 하다.

그러나 술은 역시 권하는 맛으로 마시는 것이 우리네 술자리 맛이다. 술 값을 내기엔 내심 좀 부담스러워도 서로 내겠노라며 우기는 것 또한 우리네 술자리 인심이다. 이에비해 요즘은 술잔 안돌리고, 술값도 각기 분담하는 풍조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럴 바엔 뭣땜에 술자릴 같이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술잔을 낀채 자기 알아서 마시고, 술값도 나눠서 내는 것이 깨끗하다면 깨끗하지만 너무 기계적이다. 인간이 지나치게 기계화하면 ‘숨쉬는 로봇’이 된다.

서울고법의 판결은 살벌하다. 취지는 물론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어느 몹쓸 상사가 신입 여직원에게 행한 못된 극단적 경우의 판결을 확대 해석하여 일반적 인간정서를 해쳐서는 곤란하다. 인간정서는 인간다움이다. 인격권이나 행복권 역시 인간다움의 인간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전통적 주도, 주례와 현대적 인간정서의 음주문화에서 가장 금기는 주사(酒邪)다. 술 마시고 술좌석 친구나 집에 가서 주정 부리는 못된 습성을 가진 사람은 아예 술 마실 자격이 있다 할 수가 없다.

/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