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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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巫堂)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吉凶禍福) 등의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달라고 기원하는 제의(祭儀), 굿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어 그 역사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제천의식이 있으나, 오늘날의 무당굿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남해왕조(南海王條)의 것으로, 여기에서 신라 제2대 남해왕은 차차왕으로 불렸는데 이는 방언으로 무당의 뜻이었다고 한다. 남해왕이 시조묘를 세워 친누이 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도 무당이 유리왕의 득병원인을 알아내고 낫게 한 기록이 보인다. 굿에 관한 가장 직접적인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돼 있는 장시 ‘노무편(老巫篇)’에 나타난다. 무당이 신이 들려 공수를 내리고 도무(蹈舞)하는 등의 굿의 묘사는 오늘날 중부지역 무속과 상통한다.

고고학 자료에서 오늘날 무당의 방울과 비교되는 제의용 방울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굿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굿의 종류는 그 목적에 따라 무신제(巫神祭), 가제(家祭), 동제(洞祭)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굿에 관한 속담도 많다. 겸두겸두 이득을 봄을 이르는 ‘굿도 볼 겸 떡도 먹을 겸’, 일이 끝나거나 결정된 뒤에 쓸데 없는 문제를 놓고 나와서 중언 부언한다는 ‘굿뒤에 날장구 친다’, 자기가 희망하던 일을 하게 되어 신이 난다고 ‘굿 들은 무당, 재(齋)들은 중’이라고 한다.

떡을 얻어 가지고 올까 하고 굿에 간 어미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어떤 일에 희망이 있을 때 몹시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말의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한다’, 남의 일에 쓸데 없는 간섭을 하지 말고 이익이나 얻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미운 사람이 따라 나서 기뻐하는 것이 보기 싫어 하기를 꺼려한다는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 등 상당히 많다. 예전에 무당과 굿을 미신으로 몰아 추방하려고 했었지만 ‘민속’으로 보자는 의견들이 또 나왔다. 시사하는 바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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