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운명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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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명종 18~선조 22)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7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짓는 등 신동이란 말을 들었다.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다. 본명이 초희(楚姬)인 허난설헌은 강릉 태생으로 아버지는 학자·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동지중추부사 허엽(許曄·1517~1580)이며 역시 문명을 날린 허봉(許蓬)이 오빠, 허균(許筠)은 동생이다.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하였으나 남편은 급제한 뒤 가정보다는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더구나 남매를 잃은 뒤 태중 아이까지 잃는 등 온갖 아픔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허봉· 허균마저 귀양가는 등 연속적인 비극 속에서 살았다.

“이 몸이 지녀 온 황금 비녀는 / 시집올 때 머리에 꽂았던 비녀, / 오늘 떠나시는 임께 드리니 / 천리 길 오래도록 기억하소서”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여. / 함경도 고원 길에 행색이 바쁘겠네. / 쫓겨가는 신하야 가태부 같다지만 / 임금이야 어찌 초희왕일까. / 가을 하늘 아래 강물은 잔잔하고 / 변방의 구름은 석양에 물들겠지./ 서릿바람에 기러기 울고 갈 제 / 걸음을 멈추고 차마 가지 못하리라.” “지난해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 올해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 애통하고 애통한 광릉(廣陵) 땅이여, / 두 무덤이 서로 마주 보고 있구나. / 사시나무 스치며 불고 가는 바람 / 묘지에 명멸하는 도깨비불들. / 지전을 던지며 너의 혼을 부르고 / 너의 무덤 위에다 현주를 붓노라. / 너희들 남매의 외로운 혼령 / 밤마다 서로 만나 놀고 있겠지. / 나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지만 / 어찌 자라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 / 슬픈 노래를 하염없이 부르면서 / 울음과 함께 피눈물을 삼키노라.”

‘아내의 정(閨情)’ ‘갑산으로 귀양가는 오라버니께(送荷谷謫甲山)’ ‘죽은 아들을 곡함(哭子)’의 시제가 붙은 이들 한시(漢詩)는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데 난봉질을 일삼던 남편을 생각하며 쓴 시가 눈물겹다. 비록 남편은 잘못 만났으나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 여성 특유의 감상을 읊은 그의 작품집 ‘난헌설집’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돼 애송되었다. 허난설헌은 27세에 이승을 홀연히 떠났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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