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춘추관 사관(史官)은 정오품이다. 그러나 사관이 다룬 사초(史草)는 정이품인 육조판서는 말할 것 없고 정일품인 삼정승도 열람할 수 없었다. 임금도 재위시 자신의 사초를 보는 건 금기로 삼았다. 암행어사는 정육품이다. 외직으로 치면 큰 고을의 원님인 부사(府使)쯤 된다. 그런데도 종삼품인 관찰사도 비리가 적발되면 봉고파직 했다.
관직은 높을수록 좋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도 승진을 영예로 알기는 지금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관직은 직급만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관직이 낮은 사관을 관직높은 육조판서나 삼정승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암행어사가 관찰사를 봉고파직하는 것은 관직이 높아서가 아니다. 직능 때문이다.
관직의 직급과 직능이 이처럼 구분되기는 지금의 관직에서도 별로 다름이 없다. 높은 관직이 반드시 모든 직능을 다 갖는 것은 아니다. 관직사회의 분화는 낮은 직급에도 높은 직능을 부여하는 직책이 있다. 직급도 직급이지만 직능을 중시하는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관직사회인 것이다.
경기도가 4급(서기관)인 공보관과 감사관을 3급(부이사관)으로 올려 달라고 행자부 장관에게 건의한 적이 있다. 직급이 낮아 업무를 장악하는 데 지장이 있다는 것으로 들었다. 그러니까 과장급 직급으로는 공보관이나 감사관 직능 수행이 어려우니 국장급으로 올려 달라는 것 같다.
글쎄, 잘은 모르겠으나 ‘못난 아재비가 항렬만 높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항렬만 높다고 어른노릇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직급만 높다고 직능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서기관만 해도 말단에서 공무원을 시작한 사람은 평생을 해도 오를까 말까한 자리다. 이도 안되어 부이사관으로 해달라니 직급을 너무 헤푸게 보는듯 싶다. 왕조 시대에도 낮은 직급으로 직능을 다 했다. 하물며 공복사회에서 직능보다 직급 타령을 우선시 하는 것은 도착된 가치관이다. 예산면에서도 주민 부담을 가중한다.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이 되면 월급만 오르는 게 아니다. 여러가지로 달라지는 처우에 역시 예산이 수반된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경기도가 주민의 가중부담을 예사로 아는 것은 자치단체의 도리가 아니다. 직급이 덜 높아 맡은 직능 수행이 어렵다는 건 역량의 문제다. 공보관이나 감사관의 직급 상향 조정 건의는 행자부에서 들어줄리도 없지만 들어주어서도 안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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