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 방해꾼들

전자결재는 행정간소화다. 이렇긴 하지만 중요 사안은 그래도 대면결재를 많이 한다. 결재권자가 묻고 들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면결재는 최고 결재권자까지 거쳐야 할 중간 단계가 무척 많다. 그래서 각 과마다 결재를 받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결재할 사람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노상 살펴야 한다. 회의나 대외행사에 나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마침 자리에 있어 찾아가도 결재가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여러 과에서 이미 결재판을 들고 찾은 대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줄지어 결재를 기다리는 대기자만 많은 게 아니다. 외부 손님이 안에 있으면 나올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20~3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외부 손님들은 사적인 용무로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대부분이다. 마주앉은 사람(결재권자)도 귀찮긴 하지만, 행세깨나 한다는 인사여서 면전박대를 못하고 자릴 뜨기만 기다리는 데 좀처럼 일어설 줄 모르는 얌체 손님이 적잖다.

지지대子가 일선 기자 시절에 경험한 일이다. 출입부서의 부서장이 이에 꾀를 내어 기자실과 내통하게 됐다. 귀찮은 손님이 자릴 뜨지 않으면 비서실에 암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 비서실은 기자실에 구원을 요청한다. 이윽고 출입기자들이 부서장 문을 열고 뭘 묻는듯이 들어서면 제 아무리 강심장인 얌체 손님도 일어서지 않고는 못배기게 마련인 것이다. 부서장은 “어? 손님이 계시는데…”하고 혼자 얼버무리는 투로 손님에게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는 것으로 추방은 끝나곤 했다.

추방극은 쇼이지만 진짜 취재관계로 출입 부서장을 잠깐 만나고 나와도 결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면 미안할 때가 있다. 한데, 이권따위나 부탁하러 와서 결재를 방해하는 것을 보면 곁에서 보기에도 정말 역겨운 경우가 많았다.

결재는 행정행위나 행정처분의 완성 단계다.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행정에 지장을 가져온다. 민원처리 같으면 결재를 지장받은 만큼 처리가 지연된다. 이런데도 결재판 들고 기다리는 것을 예사로 보는 외부 인사들이 적잖다.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위인들이 있다. 결재문화의 대면결재에도 개선돼야 할 점이 물론 있다. 하지만 외부인사의 방문으로 방해되는 폐습부터 먼저 시정돼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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