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의 발달은 제도보다 참여가 앞섰다. 동양사회의 발달은 참여보다 제도가 앞섰다. 이것이 동서양사회발달의 형태가 다른 차이점이다.
형사재판을 예로 든다. 서구사회 재판의 배심원제도는 현존 형태의 민중재판이다. 특히 미국은 더 한다. 미국의 개척시대에는 제도가 미비했다. 제도가 미비한 무법시대에 사회적 범죄를 응징하는 수단이 민중재판이었고, 이것이 배심원제도로 변화한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사회에서는 재판의 속결이 필요했다. 이래서 돌연변이로 나온 것이 민중재판 성격의 인민재판이다. 증거와 유·무죄의 사실심리(審理)가 생략된 채 사형의 잠재결론이 대중심리(心理)로 노출된다. 중국, 쿠바, 베트남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이젠 인민재판이 없어졌다. 북녘에서만이 아직도 경고성 공개 처형수단으로 간간이 실시된다.
내년부터 국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는 형사재판의 배심원제는 인민재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있었던 민중재판의 원류와는 맥을 같이한다. 배심원은 법원장이 주민등록 자료를 이용해 무작위로 뽑는다. 법률지식의 유무를 가리지 않는다. 시범적으로 해보는 것이어서 재판장에게 유·무죄의 기속력을 갖는 서구의 배심원 권고와는 달리 참고로만 유·무죄 의견을 개진한다.
배심원제는 서구에서도 배심원을 둘러싼 불미스런 사례가 적잖아 가끔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배심원제를 뒤늦게 도입하면서 국민참여 재판으로 현대적 사법제도 시행 이래 112년만의 사법혁명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영미법계의 배심원제가 대륙법계의 국내 재판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목할 수 있을는 진 두고 보아야 한다. 시범실시를 넘어 완전실시가 될 경우엔 유·무죄의 판단이 ‘중우재판’으로 결정날 수가 있다.
형사재판은 종국적으로 사회정의의 구현이다. 이를 위해선 피고인에게 관대해서도 안 되고, 가혹해서도 안 되는 균형이 요구된다. 어떻게 보면 국민참여란 이름의 배심원제가 시범적으로나마 실시되는 것은 법원측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국민의 불신을 사는 재판이 더러 없지 않은 것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의 남용인 것이다. 그렇긴 하나, 배심원제가 능사는 아니다. 배심원제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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