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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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종교별 신자 수는 불교가 1천72만명(전 국민의 22.8%)으로 가장 많고 개신교 861만명, 가톨릭 514만명 순이다. 이 중 불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신자가 많은 데다 종정 등 지도자 발언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이 유달리 커 대선이건 총선이건 선거 때마다 모든 후보에게서 러브콜을 받는다. 불기 2551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여야 대선주자들이 서울 조계사에서 불심끌기에 경쟁을 벌인 것을 보면 불교의 위력이 대단함이 입증됐다.

알려지기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비(非) 불교 신도다. 하지만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회에 참석했다. 범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김혁규· 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대선주자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 등도 참석했다.

손학규 전 지사는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계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봉은사 명진 스님과는 오래 전부터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무렵 낙산사를 찾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학창 시절 가톨릭 세례까지 받았지만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집안은 불교 색채가 짙다.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헌납하겠다”고 발언한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계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다. 정동영 전 의장은 가톨릭 신자지만 정치적 고비 때마다 풍경소리가 들리는 산사를 찾는다.

기독교 신자가 사찰을, 불교 신자가 성당을 찾는 일은 마다할 일이 아니다. 특히 4월 초파일 조계사를 찾은 대선주자들이 6천여명의 신자들을 향해 합장을 하거나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내빈석에 나란히 앉은 대선주자들은 한 시간 가량의 봉축 법요식이 끝날 때까지 서로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얼마 전 경선규칙을 놓고 맞붙었던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인사 외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위인들이 한나라당 평생 동지라니 정치라는 게 참으로 비정하다. 만일 이·박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하고 덕담을 건넸다면 아마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셨을텐데, 안타깝다. 정치는 역시 소인배들이 하는 ‘놀음’인가 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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