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철쭉을 ‘척촉(??)’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이 시적(詩的)이다. ‘척’과 ‘촉’은 모두 머뭇거린다는 뜻이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는 나그네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꽃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철쭉은 다른 말로 ‘산객(山客)’이라고도 불렀다. 이 역시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나그네를 연상케 한다.
철쭉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나온다. 신라 성덕왕(聖德王·702 ~ 737) 때 순정공(純貞公)이 부인인 수로(水路)와 함께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바닷가 절벽 아래서 점심을 들고 있을 때였다. 수로부인이 벼랑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몹시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천길 낭떠러지에 피어 있는 꽃을 따다 바치는 이가 없었다. 그때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견우 노인(牽牛 老人)이 기꺼이 나서 꽃을 따다 바치며 “자줏빛 바위 가에 / 잡은 손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꽃을 바치오리다.”하고 노래를 불렀다. 4구체(四句體)의 서정시가로 전해내려 오는 바로 그 ‘헌화가(獻花歌)’다. 수로부인이 갖고 싶어했던 그 꽃이 철쭉이었다.
철쭉은 아름답지만 또 독성을 지닌 꽃이기도 하다. 그 독성 덕분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남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한라산, 지리산, 소백산, 태백산, 덕유산 등은 철쭉으로 유명한 명산인데 지리산 바래봉의 경우 5월말 쯤이면 넓고 푸른 초원에 철쭉이 바다를 이룬다.
이곳이 처음부터 철쭉 군락지는 아니었다. 1971년 여기 한국·호주 시범 면양목장이 설치됐는데 방목된 양들은 자연스럽게 잡목 나뭇잎과 풀들을 먹어 치웠다. 그런데 양들이 입을 대지 않는 나무가 있었다. 바로 철쭉이었다. 철쭉에 독성이 있는 걸 알고 면양들이 먹지 않는 생존력이 신기하지만 이런 연유로 철쭉은 무리 지어 피는 게 특징이다.
남해 바다 건너 한라산의 철쭉이 절정을 맞는 것은 이맘 때다. 한라산 철쭉은 새색시 저고리처럼 화사한 육지의 철쭉과 달리 짙은 보라색을 띤다. 바람이 많은 고원에 피어서 키가 작다. 한라산엔 이러한 철쭉이 오름을 중심으로 피어 난다. 며칠 전 제주도에 갔을 때 여기저기 솟은 완만한 봉우리에 피어 있는 철쭉들이 마치 어린 소녀들이 모여 웃는 모습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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