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의 비극은 전투병력의 전사자만도 막심하다. 남쪽은 국군 15만여 명, 유엔군 3만여 명 등 18만여 명이 죽었다. 북쪽은 인민군 52만여 명, 중국공산군 90만여 명 등 142만여 명이 죽었다. 부상자 등은 이보다 몇 배나 더 많다. 중국공산군의 전사자가 많은 것은 인해전술 탓이다.
6·25전쟁 전적비 및 기념비가 많다. 수원 지지대고개에도 있다. 수원에서 의왕쪽으로 고개 막바지에 이르면 ‘프랑스군참전기념비’라고 세로로 되어 말뚝처럼 세워진 표지판이 오른편 쪽에 보인다. 누가 이를 보고 타고가던 승용차를 우회전 했다. 기념비를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효행공원 구내여서 차를 세울 수가 있다.
그 사람은 기념비 진입로 노면이 쪼각쪼각 나도록 깨진 것을 보고 먼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철문이 자물쇠로 채워진 채 굳게 닫혀 있는 게 아닌가, 의아하게 여기면서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 봤다. “?” 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념비를 세우면서 원형처럼 쌓은 토성 위 잔디를 기어 올라가 보았으나 역시 기념비는 커녕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길가엔 분명히 ‘프랑스군참전기념비’라는 표지판이 나붙고, 태극기와 청·백·적색(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 깃발이 게양대에서 나란히 지금도 나부끼고 있다. 철문앞 토성벽 양면에는 프랑스군을 찬미하고 전사자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의 동판도 붙어있다. 그런데 기념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은 ‘프랑스군참전기념비’의 실정을 이렇게 전하면서 지지대子에게 묻는 게 많았다. 수원에 기념비가 세워진 유래가 뭣이며, 언제 세웠던 것인 데 왜 지금은 없고, 그럼 그 기념비는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기념비를 철거했으면 표지판이나 동판도 없애고 깃발도 내려야지 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대로 둘 사정이 있으면 안내문이라도 써붙여야지 이 무슨 꼴이냐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으나, 지지대子는 불행히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의문은 어찌 그 사람 뿐이겠는가, 수원시의 관리에 문제가 없다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랑스는 6·25 한국전쟁 때 16개국의 유엔군 일원으로 보병부대 1천180여 명과 구축함 1척이 참전,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288명의 전사자를 냈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