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정문(虎穽文)’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글이다. 호랑이보다 잔인포악한 사람의 본성을 풍자적으로 담은 내용이다. ‘어우집(於于集)’ 권5에 수록돼 있으며, 이가원(李家源)이 ‘한국한문학사’에서 전문을 수록하고 ‘호정’이라 약칭을 썼는데, 그 뒤 ‘호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고 인간이 태어난 뒤로 호랑이보다 잔포(殘暴)한 것은 없었다. 요왕·우왕·주공과 같은 성인이 나와서 이들을 내쫓아 백성이 편안히 살도록 하였으나, 호환은 그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리산·대둔산·계룡산·속리산 등의 명산 거악이 많아 호랑이의 피해가 그치지 않았다.
행상을 다니다가, 농사를 짓다가 해를 당하고, 낚시를 하다가 혹은 물을 긷다가도 호랑이에 변을 당하기도 했다.
이때 무인 홍공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덫을 설치하였다. 덫을 설치한 뒤 피곤하여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꿈속에 창귀(?鬼)가 큰 호랑이를 타고 나타나 “왜 호랑이를 잡으려 하느냐?”면서, 인간은 호랑이보다 더 잔포한 존재임을 말한다.
인간은 죄 없는 돌을 쪼개고, 죄 없는 나무를 자르고, 죄 없는 물고기를 그물로 잡고, 죄 없는 동물을 덫으로 잡는다. 뿐만 아니다. 같은 인간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니 인간은 호랑이보다 훨씬 잔혹하다고 일갈한다.
‘예기(禮記)’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라는 데서 인간이 호랑이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출발하고 있다. ‘호정문’에서도 인간의 잔심폭성(殘心暴性)은 호랑이의 사나움보다 훨씬 더 하다는 사실을 홍공의 꿈에서 창귀의 입을 빌려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쟁을 일삼는 당쟁의 고질적 병폐를 목도한 유몽인의 현실인식이 반영된 게 자명하다.
문학사측면에서도 호랑이의 효심과 우애를 인간의 윤리의식과 비교했다. 이 글은 인간의 악랄한 심성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올바른 인간상을 만회하려는 노력이 완연히 나타난다. ‘호정문’은 조선 후기 이광정(李光庭)의 ‘호예(虎倪)’를 거쳐, 박지원(朴趾源)의 ‘호질(虎叱)’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오늘날 인간사회를 꾸짖는 것 같아 면구스러울 때가 많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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