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대표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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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물러난 60대와 70대가 주로 맡았던 아파트 동대표 자리가 30대와 40대에게 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정보통신(IT)에 밝은 이들 동대표들은 ‘아파트 문화혁명’을 주도한다. 이런 현상은 경기도 신도시와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새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수원시 영통지구 청명마을 주공4단지의 경우, 아파트 관리비 내역이나 동대표 모임에서 맺은 각종 계약 내용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 이 아파트는 단지 안에서 알뜰 장터를 여는 업체 등을 선정하는 설명회를 열 때마다 전 과정을 TV로 생중계한다. 또 설명회를 못 본 입주민들을 위해 설명회를 모두 녹화해 둔다.

동대표들은 아파트 관리내역을 점검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이런 노력으로 이 아파트 단지는 관리비를 절약하는 효과를 톡톡히 본다. 모두 946가구인 주공4단지는 현재 관리비가 연간 16억원 정도다. 이는 영통지구에 있는 비슷한 가구수·평형대의 단지보다 1억원 정도 적다. 관리가 투명해 중간에 낭비되는 돈을 줄여 관리비를 절약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아파트 관리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공4단지 공동체가 특별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의 시세는 비슷한 평형대의 다른 아파트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경기도청이 2004 ~ 2006년에 정보 공개와 회계 관리가 투명한 아파트로 선정한 이천 현대사원, 수원 강남, 의정부 신도4차 아파트 등 일곱 곳의 동대표는 대부분 40대라고 한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부터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활동을 주도하고 회원(주민)들에게 ‘검증’을 받은 30 ~ 40대 중 상당수는 입주 이후 자연스럽게 동대표를 맡는다. 올 2월부터 입주 중인 화성 동탄 신도시의 경우, 입주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직후부터 단지별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했다. 현재 분양이 된 단지엔 모두 인터넷 카페가 개설돼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파트 마감자재는 무엇이고, 조경은 어떻게 되는가’를 꼼꼼히 따져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했다. 당연히 뒷돈 거래가 사라졌다. 그래서 주민들은 인터넷 카페를 이끈 30 ~ 40대가 동대표를 맡기를 원한다. 아파트 단지가 경제적으로 운영되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경로 차원의 동대표 자리에서도 노인들이 퇴출 당하는 듯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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