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詩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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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일표이서(一表二書)’를 비롯, 800여권에 달하는 저술을 통해 철학·사상·과학·지리·법률·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눈부신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 2천500여편에 달하는 詩는 그의 실학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의 경향을 띤다. 덮어 두거나 왜곡하지 않고 축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다산의 눈에 비친 현실은 젖을 빨고 있는 아이와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물리는 가슴 아픈 시대이다. 다산의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은 성리학에 젖은 당대 지배층의 가치관으론 절대로 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그 아픔과 절망까지 그대로 그려내어 개혁하고 정화하고자 하였다. 다산의 시는 부패한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을 노래하였다.

“새로 걸러낸 막걸리 빛처럼 뿌옇고(新芻濁酒如潼白) / 큰 사발에 보리밥의 높이가 한 자로다(大碗麥飯高一尺) / 밥을 먹자 도리깨를 잡고 마당에 나서니(飯罷取枷登場立) / 검게 그을린 두 어깨가 햇볕을 받아 번쩍이는구나(雙肩漆澤飜日赤) / 소리를 내어 발 맞추어 두드리니(呼邪作聲擧趾齊) / 순식간에 보리 낱알들이 마당 안에 가득하네(須臾麥穗都狼藉) / 주고 받는 노래가락이 점점 높아지고(雜歌互答聲轉高) / 단지 보이는 것이 지붕 위에 보리 티끌 뿐이로다(但見屋角粉飛麥 ) / 그 기색을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觀其氣色樂莫樂) /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았네(了不以心爲刑役) /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데(樂園樂郊不遠有) / 무엇 하려고 벼슬길에서 헤매고 있으리오(何苦去作風塵客)”

‘타맥행(打麥行)’이란 이 시는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는 낙원을 노래하였다. 그 낙원은 질박하고 담백하지만 강인한 민중의 삶으로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데에서 이상 세계를 구하지 않고 농민의 삶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정석을 찾으려는 이 시는 경학과 실학의 정신이 관통한다.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은 끊임 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 개혁의 희망과 의지를 뒷받침해 준다. 문학으로도 시대를 개혁하려했던 다산 정약용이 더욱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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