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儀軌)’는 조선시대의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일의 전말·경과· 소요 재용·언원·의식절차· 행사 후 논상(論賞) 등을 기록해 놓은 서적이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종 때 ‘국조오례의’의 편찬에 착수, 오례에 관한 의식·절차의 정형화를 시도한 것을 의궤의 작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존하는 의궤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1600년(선조 33)에 작성된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반전혼전도감의궤(殯殿魂殿都監儀軌)’와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가 최초다.
의궤를 작성하는 행사는 왕이나 왕자의 혼례, 왕·세자·왕비 등의 책봉·책례·국장 및 빈전·혼전· 부묘(?廟) 등의 의절(儀節), 산릉·묘소의 축조, 선대왕·왕비 등에 대한 존호의 가상(加上) 또는 추상(追上), 궁전이나 능원의 축조·개수, 축성, 실록이나 ‘국조보감(國朝寶鑑)’ 또는 법전의 찬수, 선원보(璿源譜)의 수정, 공신의 녹훈, 어진·영정의 도사(圖寫), 친경(親耕)·진연(進宴) 의식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정조(正祖) 때 축성한 수원 화성의 공역 전말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는 특히 유명하다.
의궤는 어람용(御覽用)으로 1부, 의정부·예조·춘추관·강화부(江華府)·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등에 보관하는 각 1부 등으로 9부 내외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의궤 성격에 따라 부수가 일정하지 않다. 2부 만 작성할 경우엔 어람용과 예조에만 배부된다.
의궤는 반차도 등 각종 도식을 통하여 당시의 복제·장구·의물 등 제도 및 풍속적 자료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두(吏讀)·차자(借字)·각종 제도어(制度語) 및 한국한자어(韓國漢字語)를 많이 사용해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인류 역사상 조선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물인 ‘조선왕조 의궤’가 ‘팔만대장경 경판(經板)’과 함께 14일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 ‘승정원일기’를 포함해 모두 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의궤는 3천430점에 이른다. 한국의 옛 문화가 재삼 자랑스럽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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