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2호선 전철 안에서다. 20대 여성이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지 혼자 생글거리고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 메시지 발신 신호가 있었던 모양이다.
메시지를 읽던 그 여성은 그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것이다. 이윽고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소릴 참느라고 애쓰는 것이 공중장소가 아니면 통곡이라도 할 큰 슬픈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교대역에서 목격한 이같은 장면은 지지대子가 사당역에서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 아마 부모나 가족 중에 죽음 같은 불행을 당한 메시지가 급히 떴던 것 같다.
외신은 얼마전 영국 BBC방송의 흥미스런 보도내용을 전했다. 암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암이 아닌 오진으로 밝혀지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런데 당사자로서는 다행스럽지만도 아닌 어처구니 없는 사연이 화제가 된 것이다.
60대의 이 화제의 주인공은 시한부 인생의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재산정리까지 마친뒤 장례식 준비도 해놨다. 처분한 재산 가운데 상당액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호화판 여행으로 시한부 인생을 즐겼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몸에 이상이 나타나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은 결과 오진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거지가 된 그는 기뻐만 할 수 없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래도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 영국 사람은 재산을 다 없애버려 희망이 없다고 보아 절망했다지만, 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 20대 여성의 기쁨을 순식간에 슬픔으로 바꾼 누군가의 죽음, 그것은 남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기쁨으로만 추구하려 들지만 살다보면 겪는 슬픔도 인생의 중요 부분이다. 인간은 어차피 고독한 혼자만의 존재인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산다는 게 슬픈 것만은 아닌 건, 살아있는 자체가 어떤 입장에 있던 간에 최대의 행복이란 사실 때문이다. 고민되는 일이 참 많은 게 삶이지만 그래도 살만한 것이 인생이다. 이런 가운데 더욱 좋은 삶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삶이다. 인간에겐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가꿀 수 있는 신비스런 능력이 다 있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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