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에티오피아군은 화천, 금화, 양구, 철원 등 강원도의 최전방지역에서 공산침략군과 싸웠다. 참전 16개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을 정도로 에티오피아군은 용맹스러웠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의 로맨스로 유명한 에티오피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한국전에 황실 근위병 6천37명이 참전해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귀국한 참전용사들은 셀라시에 황제가 아디스아바바의 북쪽 웨레다 지역에 마련한 ‘코리안 빌리지’란 이름의 정착촌을 하사받아 그런대로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1974년 멩기스투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 참전용사들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시련에 부딪혔다. 북한을 상대로 전투를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연금도 끊겼다. 참전용사들이 코리안 빌리지를 떠나는가 하면 참전용사들이 심지어 정부에서 악마취급까지 했다고 한다.

오늘날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현재 한국전 참전용사 중 생존자는 2천여 명으로 신문과 방송에 보도됐는데 이들은 한 달에 나오는 연금 120비르(약 1만3천원)로 후손 100여 가구가 코리안 빌리지에서 매우 어렵게 생활한다. 하지만 “우린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싸웠다. 우리가 피로 지켜낸 한국이 이제 세계 10대 강국으로 성장했다니, 큰 자부심을 느낀다”며 커다란 긍지를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참전용사들에게 희소식들이 전해졌다. 춘천시가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픈쵸베르 공원에 참전용사회관과 기념탑을 건립했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부상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그들에게 보은의 쉼터를 마련해주기 위함에서였다. 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도움으로 ‘히브레트 피르’ 초등학교 건물이 세워지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고 있다. 한국에서 지원한 컴퓨터와 과학실습 기자재 등을 갖춘 명문 학교로 이름이 나 원근에서 많은 학생들이 찾는다. 한국복지재단(후원 문의전화 1588-1940) 등 NGO 단체들도 참전용사 및 후손들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지금이라도 한국이 부르면 달려가겠다”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이젠 한국이 정부차원의 은혜를 두고 두고 갚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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