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자배구가 최성기를 누릴 무렵, 일본의 배구 전문지 ‘발레이 볼’은 ‘그 가공할 점프력은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후손의 체격 조건 때문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흑인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의 후손들이다. 대를 이어 사는 텃밭 흑인들은 선조가 노예인 것이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은지 144년이 된다. 인종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흑백 결혼이 늘고, 문화적으로는 인기인들이 많고, 경제적으로는 부유층이 두터워지는 가운데 정치적으로 라이스 같은 여성 국무장관을 배출할 정도가 됐다. 흑인 대통령도 나올 전망이다.
남북전쟁 직전의 노예 한 명당 평균 몸값은 그때 돈으로 788달러(현재 1만4천400달러) 였다. 우리 돈으로 1천300만원 가량 된다. 흑인 노예 후손들의 보상 요구가 있었다. 미 정가의 흑인의원 및 인권단체들이 ‘정의 실현에는 시효가 없다’며 선조들이 겪은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을 들고 나섰다. 존 코니어스 민주당 하원 의원은 1999년 11월 이를 연방정부에 공식으로 제기한 장본인이다. 2002년 8월엔 ‘흑인보상협회’가 구성됐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예 문제를 두고 각국 지도자들이 사죄 성명을 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노예 노동을 시킨 기독교인들의 용서를 빈다”고 했다.(1985년) “우리는 선조들의 부끄러운 죄를 나눠 가져야 한다”고 한 것은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이다.(2006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노예 무역의 과실을 따먹은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1998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남미의 노예 수입국이던 브라질 룰라 다실바 대통령은 같은해 2월에 사죄했다.
노예선 아미스타드호 사건은 1839년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53명이 아미스타드호 배를 타고 가다가 채찍질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선상 반란을 일으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아미스타드호를 재현, 영국과 아프리카 등 2만2천500㎞ 항로를 잇는 ‘사죄 항해’가 지난달 21일 코네티컷주 뉴 헤이븐항을 출항했다.
사죄를 모르는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얼마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통과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미국 의회에 항의하고 나선 것은 후안무치하다. 식민지 여성을 전선에 끌어가 ‘성의 노예’로 삼았던 일본은 전사상 유례없는 범죄에 진솔한 사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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