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학’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최악의 대통령’을 통해 다음에는 ‘이런 대통령을 뽑지 말자’는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선정한 바 있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 10명’의 공통점은 ‘독선과 시대정신 부재, 실패한 인사’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대통령에 오른 앤드루 존슨(재임, 1865~69)은 상생의 정치를 무시하고 고집불통으로 타협을 거부했다. 결국 의회와의 불화로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가까스로 상원에서 부결됐다.
존 타일러(1841~45)는 임기 내내 적대적인 의회와 맞붙어 싸웠다. 취임 5개월 후에는 한 명을 제외하고 내각도 모두 대통령의 곁을 떠났다. 소속 정당인 휘그당으로부터도 제명을 당해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리처드 닉슨(1969~74)은 중국과의 수교 등 외교정책에선 수완을 발휘했으나 음모와 오만, 거짓으로 불명예에 올랐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불신을 낳았다. 이들은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한 ‘나 홀로 대통령’이다.
한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미국 역사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이런 못된 점을 익힌 모양이다.
제임스 뷰캐년은 남북 분열의 위기에서 미숙한 대처로 미국을 남북전쟁으로 내몰았다.
프랭클린 피어스(1853~57)는 노예제 존속을 주장하는 노련한 정치가들에게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 밀러드 필모아(1850~53)도 1850년 ‘달아난 노예 소환법’을 적극 지지하는 등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하버트 후버((1929~33)는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의 위기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경제적 낙관론만 주장하다가 결국 미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 넣었다.
정치적 담합으로 대통령에 오른 워런 하딩(1921~23)은 오하이오 주 친척과 포커 친구들을 장관직 등 요직에 앉혀 부정부패를 초래했다. 율리시스 그랜트(1869~77)도 자신의 군 시절 동료들, 고향 친구, 친인척들을 불러 들여 보좌관이나 정부 공직에 들어 앉혔다. 한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미국의 정치사를 읽으면서 아마 이런 점을 배웠나 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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