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제갈량’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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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북한군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여러 수단을 썼다. 미군은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동해에 있는 삼척과 서해의 진남포, 달양도를 일제히 폭격했다. 동해에서 상륙작전을 펼 수도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한편 맥아더는 신문과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10월 이후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펼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미군이 실제로 동해에서 움직이면서 인천에 상륙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결코 인천 바다론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군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결국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이를 기반으로 북한군을 압록강까지 밀어 붙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허허실실(虛虛實實· 비어있는 것이 꽉 차 있는 것이고, 꽉 차 보이는 것이 비어있는 것) 전략’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일명 삼국지)에서 최고 지략가인 제갈량이 조조를 밀어 붙인 전략도 ‘허허실실’이다.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도망가리라 예측하고 화용도로 통하는 길에 군사를 매복시키면서 불을 피워 연기를 내도록 하였다. “조조가 이를 알고 피하지 않겠느냐”고 관우가 묻자, 제갈량은 “조조는 우리가 매복한 것처럼 꾸미느라 일부러 연기를 피웠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과연 조조는 제갈량의 전략에 말려들었다. ‘삼분천하(三分天下)’는 제갈량이 천하를 얻고 싶어하는 유비에게 “조조와 손권이 세를 키우도록 놔두면서 백성의 지지를 얻는 데 주력하라”고 권고를 한 데서 비롯된 전략이다. 다른 세력들끼리 서로 견제케 함으로써 균형 구도를 만들어서 자신의 힘을 키우는 전략은 칭기즈칸과 나폴레옹이 공동으로 썼다.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속의 칼)’는 제갈량이 형주를 차지하려던 주유를 격파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다. 주유가 서천을 치겠다며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 결국 형주를 약화하려는 계략임을 간파하고, 지원군을 보내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형주를 단단히 지킴으로써 주유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대선을 앞두고 각 예비후보들의 캠프에 ‘자칭 제갈량’들이 모여들면서 ‘허허실실’ ‘삼분천하’ ‘소리장도’를 흉내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심지어 모 후보에겐 ‘각하’라는 존칭까지 썼다. 소들이 모여 웃을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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