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에는 나무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다. 나무와 풀 부수가 으뜸으로 많고 단어도 제일 많다. 근본 본(本)은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모습이다. 저녁 묘(杳)는 나무 밑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며 아침 단(旦)은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삼(森)은 나무가 한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인데, 우주 간의 모든 현상을 삼라만상(森羅萬象)이라 한 것을 보면 나무는 근본이자 전부인가 보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시간과 관련된 한자 중에 나무와 관련된 말이 많다. 음력 2월은 매화를 보는 매견월(梅見月)이고, 음력 3월은 앵두꽃이 피는 앵월(櫻月)이다. 5월은 꽃이 만발하며 향기가 구름처럼 자욱하기 때문에 향운(香雲)이라 했으며 벽오동잎이 지는 음력 7월은 오월(梧月)이다. 이지음에 내리는 비를 오동우(梧桐雨)라고 했다.
나무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의 재료였다. 밤나무론 신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주를 율주(栗主)라 했고, 밤나무로 만든 다갈색 붓은 율미필(栗尾筆), 오동으로 만든 거문고를 동군(桐君)이라 불렀다. 계수나무로 만든 수레는 계거(桂車)였으며 도끼자루를 부가(斧柯)라고 했다.
나무는 출판의 판목(版木)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지식을 전파한 수단이었다. 특히 재질이 단단한 배나무(梨)와 대추나무(棗)가 판목으로 많이 사용돼 이조(梨棗)는 출판을 의미한다. 가래나무(梓)는 워낙 고급목재인지라 국가에서 중요한 책을 만들 때만 사용했다. ‘책을 상재(上梓)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나무는 오래 살기 때문에 수명과 관련된 한자에 나무가 많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참죽나무(椿)는 특히 오래 산다. 그래서 장수를 의미하는 춘년(椿年), 춘수(椿壽), 춘령(椿齡), 대춘(大椿)에는 모두 참죽나무가 쓰였다.
‘나무에 미친 나무선비’로 널리 알려진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과·중국사 전공)가 낸 네번째 나무책 ‘나무열전’을 읽으면 마치 나무가 인간의 일생을 얘기해주는 것 같아 재미를 더해 준다. 나무의 비밀과 역사가 한자로 풀이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무들의 마을에서 나무처럼 살고 싶은 날, 넓은 오동잎에 떨어지는 오동우(梧桐雨) 빗소리를 벗 삼아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선인들의 풍류가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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