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의 개조(開祖) 마호메트(AD 571?~632)는 아라비아의 수도 메카서 유복자로 태어나 여섯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고는 조부, 숙부에게 전전하며 성장했다. 거상의 미망인 하디쟈를 도와 무역일을 하다가 그녀의 구혼으로 결혼한 것이 스물다섯살 때다.
대상(隊商)으로 시리아며 팔레스타인 등지를 내왕하며 종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마흔살이 넘어 메카 근교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중 홀연 알라신의 계시를 받아 예언자가 됐으나 코레이슈족의 박해로 메카를 탈출한 것이 622년으로 이 해가 이슬람교의 기원 원년이다.
메디나로 피신한 마호메트는 8년간의 교세 확장으로 무장한 교단을 이끌고 메카를 무혈입성, 다신교의 본산이던 카아바 사원을 알라를 유일신으로 한 최고 신전으로 삼았다. 메카 순례와 카아바 신전 참배는 이슬람교도 최고의 영예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호메트가 생전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후, 그의 사후에도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이집트에 이어 서남유럽인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다. 732년에는 중부 프랑스의 투울지방까지 진출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중세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적잖게 이슬람교로 개종해 두 종교는 숙적의 사이가 됐다. 18세기 유럽 학자들은 이슬람교도의 정복을 가리켜 ‘오른 손에는 코란, 왼손에는 검’이라는 말로 혹평했다. 코란은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아라비아문학의 원천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슬람교도의 정복이 개종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정복지역의 기독교 교인들은 일정한 세금을 내면서 신앙과 재산을 보장받았다. 개종은 10세기 이후 이슬람교의 활발한 선교 활동에 영향이 컸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과거는 20세기 들어 객관적인 연구로 적대관계의 조명이 많이 해소되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중동 분쟁은 꺼지지 않는 불씨다.
아프간 반정부군에 피랍된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의 지칭에서 선교는 빼달라는 현지 한인들의 요청이 있었다. 아프간의 이슬람 교도들로부터 거부감을 사 좋지않은 영향이 미칠것을 우려해서인 것이다. 이슬람교 역시 권선징악의 종교다. 탈레반은 자기 나라에 봉사하러 간 한국인을 건강한 모습으로 전원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질 몸값으로 돈을 요구하고 나섰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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