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쉽지만 수성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고 바꿔 말하기도 한다. 당나라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얘기다. ‘정관정요’는 태종 이세민의 치적을 수록한 책자로 ‘정관’은 당태종의 연호다.
수나라 양제를 몰아내고 자기 아버지가 당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세민이 뒤를 이어 제왕이 되고 나서 한 날 중신들에게 물었다. “제왕의 사업 중 창업과 수성 어느 쪽이 더 어렵냐“고 했다. 중신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방현령이란 대신은 창업이 어렵다고 하고, 위징이라는 대신은 수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신하들의 토론을 듣고 있던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방현령은 짐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면서 구사일생의 고비를 수차에 걸쳐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그대가 창업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제위에 오른 짐과 더불어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조금만 방심하면 대업이 다시 허물어질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도록 힘쓴 위징이야말로 수성이 어렵다고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키면 창업의 어려움은 과거지사가 됐다. 앞으로는 경들과 더불어 수성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으니 이를 명심토록 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는 당 태종의 창업과 수성을 함께 경험한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 이세민은 인재 기용을 잘했다. 결점은 숨겨주며 장점을 크게 활용하는 인사 방침으로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을 했다. 이 때문에 제왕의 자릴 두고 친형을 죽인 허물을 덮을 수 있는 당나라 역대 제왕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평가받는 ‘정관의 치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을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황제에 올랐던 진시황의 창업이 아들 대에 15년만에 망한 것을 보면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을 알 수 있다. 패업(覇業)만이 아니다. 재벌기업의 흥망성쇠나 부침을 보아도 수성이 어려운 사례를 본다.
백년 정당을 표방하면서 거창하게 출발한 열린우리당이 불과 4년도 안되어 뿔뿔이 탈당해 지리멸렬한 것을 보아도 수성이 창업보다 더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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