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성폭력 범죄’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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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하기 조차 민망하다.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2천317건의 사건 중 가해자가 친족이나 친·인척인 경우가 11.2%라고 한다. 여기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 257건 중 158건은 친부를 포함한 4촌 이내의 혈족, 2촌 이내의 인척 등 ‘성폭력특별법’에서 규정한 친족 간 성폭력에 해당하는 경우가 무려 72건이다. 실로 무참하다.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지자 ‘짐승보다 못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하다. 공소시효는 더 큰 문제다. 공소시효가 지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중엔 동네 사람이 10.8%, 주변의 지인이 4.3%, 친밀한 관계나 서비스 제공자가 각각 2.3%, 교육기관 관계자나 직장 동료가 각각 1.9%로 아는 사람인 경우가 86.8%다. 신고된 친족 성폭력 사건이 빙산의 일각인 점을 추정하면 성폭행범이 도처에 우글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한 연령은 유아와 어린이 시절이 대부분이다. 7세 이하의 유아가 24.9%, 8~13세의 어린이가 48.6%, 14~19세의 청소년이 13.3%, 20세 이상의 성인이 12.5%다. 전체 성폭력 상담 통계에서 성인 피해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대비되지만 이유가 있다.

공소시효가 지난 피해 사례 중 13세 미만 유아와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가 73.5%나 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상담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친아버지나 친오빠 등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가해자일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피해 사실을 주변에 이야기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성폭력상담소의 말이 입증한다.

친족의 성폭행이나 미성년자에게 피해를 입힌 성범죄는 어떤 중벌에 처해도 미약하고 부족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말 13세 미만 아동이나 친족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거나 공소시효를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무소식인 건 입법부의 직무 유기다. 관대한 법률 탓으로 처벌 받지 않은 성범죄자가 또 다른 약자를 대상으로 삼아 범행을 저지르는 건 상식이다. 반인륜적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법 제도의 정비가 정말 시급하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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