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주문화의 진수는 권하는 맛이다. 서구식은 술잔을 권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본따기도 한다. 자기의 잔에 자기가 알아서 술을 채워 훌쩍거리는 것이다.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래선 술맛이 안 난다. 술좌석의 성격이 기계적 자리일 것 같으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먹어도 된다. 합리적인 것은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술은 대개 감성적으로 먹는다. 이해 관계의 주석이 아닌 정담의 주석에선 자기 잔을 자신이 채워 마시는 건 청승맞다. 술잔을 권하는 전래의 권주에 ‘권주가’가 있다. 나이 든 어른에게 장수를 비는 권주로는 ‘헌수’가 있다. 술은 서로 권하는 맛인 것이다. 합리주의 보단 정리주의인 것이 우리의 술자리다.
술은 잘 마시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다. 반면에 잘못 마시면 ‘광약지장’(狂藥之長)이다. 잘 마시면 심신에 더 할 수 없는 활력소가 되지만, 잘못 마시면 심신을 피폐시켜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잘 마시는 것은 적절하게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정철(鄭澈)의 ‘주문답삼수’(酒問答三首)는 적절한 음주를 다짐한 시조다.
현대 음주문화로 ‘폭탄주’가 있다. 양주나 소주를 담은 양주잔을 맥주잔에 넣어 맥주를 가득히 부어 마시는 것이다. 다 마시고는 맥주잔을 흔들어 양주잔과 부딪치는 소릴 달랑 달랑하게 내는 것이 ‘폭탄주’ 음주의 예절이다. 비난도 많고 예찬도 많은 것이 ‘폭탄주’다. 수년 전이다. 검찰 내부에서 불거지곤한 고약한 일들이 ‘폭탄주’ 바람에 생겨 내부 지침으로 ‘폭탄주’ 금지령을 내린적이 있다. ‘폭탄주’의 원조는 5·16 주체세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초대 중앙정보부장 시절의 김종필이다.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난 뒤에 밀려드는 흥분과 불안을 ‘폭탄주’로 해소시켰던 것이다. 발단이 어떻고 원조가 누구든 간에 ‘폭탄주’는 이제 부동의 현대 음주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 앙금을 풀기위한 모임으로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핵심 초선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폭탄배’ 순배가 있었다. 처음엔 서로 서먹 서먹해하다가 뼈있는 말을 주고 받더니, ‘폭탄주’가 몇 순배 돌고나서는 무겁던 분위기가 녹았다는 것 같다. 술이 깨고나면 다르긴 하겠지만 그런 좌석이 없었던 것 보단 나을 것이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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