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피해자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가슴을 앓는다.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고 입원했어도 문병을 오는 가해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해자는 형사 합의금을 제시한 후, 합의가 안 돼도 어차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니까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피해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치 않은 사람이 돼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가해자는 거의 죗값을 받지 않는 셈이다.

초등학생 A군이 하굣길에 1t 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다. A군이 왕복 2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 과실이 인정돼 가해자는 불구속 입건됐다. 하지만 A군의 부모는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기는 커녕 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가해자의 변호사가 합의금 2천만원을 제의해 왔을 뿐이다. A군의 부모는 ‘아, 사람을 죽여도 우리나라에선 아무렇지도 않구나’하는 생각만 들어 실의 속에서 살아 간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가해자 중 구속된 경우는 2000년 1만5천344건에서 2005년 8천539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경찰청의 자료다. 교통사고가 감소한 게 아니라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재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속이 급감하자 가해자들은 대형사고를 내고도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형사 합의금 대신 법원에 공탁금을 내놓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보험회사에 청구해서 공탁금을 도로 받아가곤 한다. 가해자들은 ‘처벌을 가볍게 해달라’며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제시하고, 합의에 실패하면 대부분 법원에 공탁금을 낸다. 피해자에게 줄 수 있는 돈을 맡겨 놓을테니 이 점을 정상 참작해서 벌을 가볍게 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탁금 제도가 악용되는 사례도 많다.

수년 전 부터 사망사고라고 해도 음주운전 등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야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 피해자측과 연락 한 번 없이 1천만~2천만원의 공탁금 통지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당국이 가해자의 인권을 중시하다보니 연간 수십만명에 달하는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소설가 K선생은 초보운전시절 사고를 내 사람이 크게 다친 모습을 보고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 심약한 사람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교통사고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가해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게 세상살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