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산불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의 재앙을 가져온 ‘판도라의 상자’는 연유가 불에서 발단이 됐다. 주신(主神)인 제우스신은 인간들이 몹쓸짓 하는 것을 혼내줄 요량으로 불을 몰수했다.

그러자 불이 없어 고통당하는 인간들을 본 거인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돕기로 작심했다. 거인신은 제우스신에 따돌림을 당하곤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산삼의 마른 대를 옷속에 숨겨 하늘로 올라간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신의 마차 바퀴에 산삼대를 부벼 옮겨붙은 불씨를 지상에 내려와 인간에게 주었다.

이에 크게 노한 제우스신은 흙으로 빚은 아름다운 여인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 세계로 내려보내면서 상자를 주었다. 이 여인의 이름이 판도라다. 판도라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거인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했다. 형은 동생에게 판도라를 조심하라고 타일렀으나 워낙 미모가 뛰어나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사냥나가 혼자 무료하게 있던 판도라는 평소 궁금히 여겨온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마침내 뚜껑을 열어봤다. 이상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나타난 온갖 괴물은 지진·번개·화재 등 불에 관련한 재앙과 404가지 병마였다. 제우스신은 불의 몰수령을 어긴 인간을 판도라를 통한 재앙의 상자로 응징한 것이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사상 최악의 산불에 휩싸였다.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 등 전 국토 임야의 약 절반을 태운 산불은 가까스로 잡았으나 후유증이 심하다. 60여명이 죽고 가산을 잃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논란이 분분하다. 이달 총선을 앞둔 정치적 방화설, 유명무실한 그린벨트정책이 산불 확대를 빚은 화근이라는 환경단체의 주장 등으로 그리스 정부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도 판도라의 상자가 안겨준 재앙인가, 그리스는 신화만큼 많은 유적지가 있다. 큰 산불 바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둘러 떠나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마저 말이 아닌 모양이다. 그리스 소방당국은 유적지 보호에 안간힘을 다 했다. 아폴로 신전 앞까지 번진 불을 진화하는 등 화마의 위기에 처한 올림피아 유적지 등이 화를 면한 건 그래도 제우스신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그리스 사람들은 믿는다는 소식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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