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사랑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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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그림은 광기(狂氣)다. 고흐 그림에 나타나는 색채와 질감은 일반적인 인간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해 있다. 고흐가 사랑 받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사람들은 고흐의 광기를 정서불안이라고도 하고, 또 정신병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흐가 처음부터 정서불안과 정신병에 시달린 건 아니다. 영국의 미술사가인 데릭 펠은 광기의 원인은 실연(失戀)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첫번째 단서는 고흐의 출생이다. 첫아이를 사산한 후 1년 만에 고흐를 얻은 어머니는 첫아이에게 지어주려고 했던 이름을 그대로 고흐에게 지어주었을 정도로 잃어버린 아이에게 집착했다. 고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대체물이라는 박탈감에 빠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고흐는 20대 중반 무렵 남편을 여읜 사촌 케이를 사랑했다. 그녀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무모한 애정을 퍼부었고 결혼에 반대하는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손등을 등불에 지지기도 했다.

고흐가 두번째 사랑한 사람은 미혼모 창녀 시엔이었다. 고흐는 고달픈 시엔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기사가 되어 시엔을 구해내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고흐는 시엔의 병을 고쳐주고 모델로 쓰면서 사실상 부부생활을 했다.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빈약한 여인을 그린 ‘슬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스케치는 시엔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시엔은 몸이 좋아지자 다시 매춘에 뛰어 들었다. 고흐는 결국 자신이 시엔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계를 정리했다. 시엔과 헤어지고 헤이그를 떠난 고흐는 독일 접경 근처 마을에서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은 전형적인 농촌 여인 마르호트를 만난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도 못한 채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또 다시 측은지심이 발동한 고흐는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마르호트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고흐의 연애는 늘 엽기적인 상처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고흐의 그림 ‘탕부랭 카페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델인 카페 주인 세가토리와의 관계가 그랬고, 고흐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가세 박사의 딸 마르게리트에 대한 짝사랑도 비극으로 끝났다. 마르게리트에 대한 사랑이 실패한 후 고흐는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다행히 그림은 남아서 빛을 발하고 있지만 고흐의 연애는 여자에게 농락 당한 남자의 사랑, 무모한 애정을 보여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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