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년 고도(古都) 경주 시내에서 계림을 지나 불국사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드넓은 논바닥이 보인다. 옛 서라벌 시가지는 지금의 경주시내가 아니고 바로 이 논바닥 터다.
서라벌 민가마다 숯으로만 불을 지펴 시가지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는 옛 기와집 기왓장 조각이 이따금씩 논에서 출토되기도 한다. 논바닥 가운데 저만큼 우뚝 솟은 산이 남산이다. 김유신이 김춘추와 밀애를 나눠 아이를 가진 누이동생을 집마당에 쌓아올린 장작에 올려놓고 불태우는 연기를 진덕여왕이 마침 보았던 곳이 남산이다. 주위에 물어 연유를 알게된 진덕여왕은 김춘추에게 두 사람이 혼인하도록 급히 명하여 화를 면해 전화위복이 됐다.
고인이 된 가수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 노랫말 중에 나오는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 신라의 노래를’ 하는 금오산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의 원래 이름이 금오산이다. 서울 남산의 원래 이름이 목멱산인 것과 같다.
지평선에 솟은 남산은 수원의 팔달산처럼 산맥이 이어지지 않는 야산이다. 야산이긴 해도 계곡과 암벽이 무수하다. 남산은 한 마디로 신라의 거대한 야외사찰이다. 종횡으로 치달은 계곡마다 절터·석불·석탑 등이 무수하고 암벽엔 부각된 마애불상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경주남산불적’(慶州南山佛蹟)이라고 부르는 남산은 고도의 성역이었던 것이다.
남산 열암곡(列岩谷)에서 통일신라 때의 여래입상(如來立像)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높이가 6.2m인 이 불상은 사진으로 보아도 당당한 위풍속에 머금은 잔잔한 미소가 1천300년 전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만큼 생생하다. 서라벌 사람들에게 불교의 도장(道場)이었던 남산은 눈에 띄는 불적 말고도 감춰진 불적이 이따금씩 출토되곤 한다.
지지대子가 조선일보 대구주재기자로 있을 땐 당시 국내 최대의 불두(佛頭)가 빗물에 씻겨 자연 출토된 적이 있었다. 수년 전 타계한 이규태씨가 문화부장으로 있을 적에 그와 함께 2군사령부민사부의 협조를 얻어 불두를 인양했다. 공병과 기중기 등 병력과 중장비가 동원된 발굴 작업은 불신을 찾을 길 없어 화강암으로 조각된 불두만 인양, 경주박물관에 안치했다. 지금도 경주박물관에 가면 마당에 모신 이 부처님 머리를 볼 수가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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