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한국땅’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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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서북쪽으로 1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2만894㏊의 초원은 법적으로 대한민국 땅이다. 서울 여의도의 70배에 이르는 큰 땅이다. 이 땅은 1978년 한국 정부가 211만5천 달러(약 20억원)를 주고 사들였다. 당시 돈으로도 10억원이 넘어 80㎏들이 쌀 4만 가마를 살 수 있는 거액이다. 그런데 이 땅이 30년 동안 방치돼 지금은 잡목만 드문 드문 서 있는 황량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 땅을 사들인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 해외개발공사(현 한국국제협력단·외교통상부 산하)였다. 당시 간호사· 광부를 모집해 유럽에 보내는 등 해외 이민을 관장하던 기구였다.

“남미에 농업이민을 보내 새마을 운동 근거지를 일구자”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아르헨티나의 땅을 구입한 후 300명의 농업 이민자를 파견, 코리아타운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1차 이민자로 수십명을 파견해 수수·면화·콩을 시험 재배해 봤지만 작황이 형편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름철엔 40도를 넘는 폭염이고 겨울엔 일교차가 커 서리가 잦다. 강수량은 연평균 500~600㎜에 불과하다. 이 땅을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의 이름이 스페인어로 ‘소금기가 있는’ 뜻의 ‘살라도(salado)’다. 땅에 염분이 많다.

결국 1차 이주자 수십명은 농장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의 도시로 흩어졌고, 2차 이주자 모집은 불발로 끝났다. 그 후로 땅은 버려졌다. 당초 개발비로 2천600만 달러를 책정했으나 태부족이란 판정이 내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땅에서 돈을 벌기는 커녕 오히려 관리비의 명목으로 매년 1만2천 달러를 현지에 보낸다. 이 땅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몇차례 있었지만 무위에 그쳤다. 주(駐)아르헨티나 대사관이 좀 더 자세한 현지 조사를 실시했지만 그 때마다 ‘영농 부적절’만 나왔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엔 구조조정 차원에서 땅을 매각하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2만894㏊이면 전북 새만금 간척지 땅의 절반 정도인 거대한 땅이다. 정부가 최근 이 땅을 목축·조림지 등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기대된다. 개척단을 모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강점기 시절의 개척 정신을 발휘한다면 아르헨티나의 한국 땅은 옥토로 개간될 수 있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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