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이혼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1990년대 일본에선 남편의 정년퇴직으로 퇴직금이 나온 뒤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 이혼’이 사회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엔 이혼을 결심하는 시기가 남편의 정년퇴직 후가 아닌 자녀의 대학 입학 시기로 더 앞당겨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2만 5천32쌍으로 2005년에 비해 2.7% 감소했다. 1980년대 말부터 급증하던 이혼은 2004년에 전년보다 16.6% 줄어든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 3월 성급한 이혼을 막기 위해 ‘이혼 숙려제’를 도입한 이후 이혼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65세 이상 노년 부부의 ‘황혼 이혼’이 늘더니 지난해엔 45~54세 중년 부부의 이혼이 더 크게 증가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이혼이 줄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45~49세 여성 중 이혼한 사람은 8천111명으로 2005년보다 10.1%가 늘었다. 50~54세 여성은 3천711명으로 2005년보다 16.9%가 더 이혼했다.

20대 중·후반에 결혼해 30대 초까지 자녀를 낳는 여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 여성의 이혼 시기는 자녀의 대학 입학 시점과 맞물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접수한 전체 이혼 상담 건수(8천460건) 가운데 40, 50대 중년 부부의 상담 건수가 4천454건으로 절반이 넘는 52.7%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혼 사유다. A씨의 경우 3년 전 부터 한 달에 한번씩 지방의 치매노인단체를 찾아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을 남편이 못마땅해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남편은 내가 집에만 있기를 원했고, 가정에서 왕처럼 군림하려 했다. 21, 20세 두 아들도 대학에 넣었으니 나도 새 삶을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이처럼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기인 결혼 20년차쯤이 되면 상당수 중년 여성이 ‘제2의 인생’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고 한다. 이럴 때 자녀의 대학 입학은 이혼 결심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격 등의 차이로 이혼한다고 하니 자녀의 대학 입학이 경사가 되는 게 아니라 이혼사유가 되는 셈이다.

참 별난 세상이 됐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