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31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창립 기념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언론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관련한 의혹을 철저히 검증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저희는 일개 공기업 사장 한 사람 (임명)하는데도 옛날에 음주운전했다고 자르고, 옛날에 부동산 상가 하나만 있어도 도저히 장관이 안 된다”고 대못질을 했다. 물론 다섯차례나 위장전입을 한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규용 환경부 차관의 위장전입 사실을 알고도 그를 장관에 내정했다. 괴이한 건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부동산 취득 목적이 아닌 자녀 취학 목적의 위장 전입은 인사검증 시 결격 사유로 보고 있지 않다”며 “(8월의) 노 대통령의 발언의 요지는 언론이 특정 대선 후보와 관련해서는 대개 의혹을 덮거나 적극적으로 검증하지 않는 데 비해 장관 등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투기 목적이든 자녀 진학 목적이든 간에 위장전입은 특히 공직자로선 해서 안 될 위법행위다. 자녀 교육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위장전입은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다.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7월과 8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원내 1당이던 한나라당이 두 사람의 위장전입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이규용 장관 내정자의 위장전입엔 꽤 관대해졌다. 나경원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장관 부적격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청와대 공격의 호재로 이용했을 한나라당이 우호적으로 바뀐 건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건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회 청문회 등의 과정에서 이 내정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부각되면 이명박 후보의 위장 전입 문제도 함께 쟁점화될 것을 우려해서 그러는 것이지만 이는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제1야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대선에서 표를 잃는다. 따라서 “분명한 결격 사유임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해임건의안 등) 상응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반대는 지극히 당연하다. 청와대가 내정을 철회하거나 아니면 이 내정자가 자진사퇴하는 게 순리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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