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북으로는 아한대지방의 홋카이도에서 남으로는 아열대지방의 오키나와에 이르는 열도로 구성된 나라다.
오키나와는 2만249.9㎢의 작은 섬이다. 16세기엔 유구(琉球)왕국으로 홍길동이 이곳으로 가 왕국의 꿈을 펼쳤다는 전설이 있다. 정사(正史)로는 1609년 가고시마 지방의 영주 시즈마가 오키나와를 정복, 1879년 메이지유신으로 오키나와 현(縣)이 된 것으로 전한다.
오키나와는 2차대전 막바지 고비의 비극의 땅이다. 1945년 여름,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앞둔 초토화작전은 오키나와에서 시작됐다.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작전, 일본군의 방어작전은 50여일을 끌면서 양쪽에 십 수만의 사상자를 냈다. 마침내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성공, 미군이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의 사진은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그 해 8월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잇따른 원폭으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없이 전쟁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참극은 비참했다. 비전투원인 주민들이 옥쇄란 이름으로 학살됐다. 옥쇄는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다같이 목숨을 끊는 집단자살이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수가 무위로 돌아갈 즈음에 무고한 주민들에게 수류탄 등을 나눠주면서 옥쇄를 강요, 수 천명의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죽어간 것이다.
오키나와는 제2차대전이 종전되고도 바로 일본으로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전쟁의 상흔이 깊었던 지역이다. 1945년 8월 미 군정, 1952년 반 군정·반 민정에 이어 일본에 복귀한 것이 1972년이다.
지난달 29일 오키나와에서 무려 11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주민궐기대회가 있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의 주민 옥쇄 강요를 삭제하는 교과서 왜곡에 항의해 들고 나선 것이다.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숨김없이 전하는 것이 더는 그같은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극성이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남아 참략사도 왜곡하는 그들이 이제는 자국의 전쟁사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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