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불거지는 금융기관들의 비리나 부적절한 경영사례는 고객들에게 큰 실망감을 준다. 공익적 기관의 하나인 은행의 부조리는 고객들의 재산과 국고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저축은행들이 서민들에게 고리의 부담을 지우는 대부업체에 3천600억원대의 자금을 빌려줘 이들의 ‘돈놀이’를 도와 준 비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서민 금융기관인 저축은행들의 경영방침이 이 모양이니 본업인 서민 대출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달 30일 진수희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저축은행은 이미 서민 금융기관임을 포기한 셈이다.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저축은행 110곳 중 46곳이 120개 대부업체에 3천616억원을 대출해줬다. 이들 저축은행은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형식으로 연 7.5~18.0% 금리로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서민을 상대로 한 소액 신용대출 규모는 계속 줄여왔다. 2002년 말 2조8천억원 수준이었으나 2003년 2조4천억원, 2004년 2조원, 2005년엔 1조5천억원으로 점차 축소하였다가 지난해 1조1천억원까지 줄였다. 불과 4년여 만에 서민 대출 규모를 60%나 감소했다.
저축은행들이 서민들에 대한 대출에는 소극적이었던 반면, 서민들에게 고금리 부담을 지우는 대부업체의 돈벌이를 도와주는 대가로 일정 부분 수익을 확보해 온 셈이다. 저축은행들이 본연의 역할인 서민대출을 외면한 채 대부업체들의 전주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굽어진 서민들의 경제가 허리를 펼리 만무하다. 더구나 일부 저축은행들은 자산 대비 대부업체 대출 비중이 커, 만약 대부업체들이 부실에 빠지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는 문제까지 안고 있어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현재로선 대부업 대출이 저축은행업계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가 안돼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금감원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이 더 이상 확대되기 전에 저축은행들이 서민 소액 신용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저축은행들도 대부업체 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영업전략을 수정하여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서민의 경제적 고통이 감소돼야 국가가 부강해지고 궁극적으로 사회가 밝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저축은행의 경영방침으로 삼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