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간신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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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당태종 이세민은 용인술이 독특했다. 어진 인재라고 판단하면 인물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곁에 뒀다. ‘위징’이 대표적인 사례다. 위징은 당태종과 왕위 다툼을 벌였던 친형 이건성의 책사였다. 권력의 향배에 동물적인 감각을 타고났던 위징은 주군에게 ‘하루 빨리 이세민을 죽이라’고 권했다. 그러나 역사는 우유부단했던 이건성의 편이 아니었다. 이세민은 태자 이건성을 죽인 후 아버지를 압박해 왕위에 올랐다. 위징은 천하의 역적이 되었다.

당태종은 위징을 불러 왜 그런 짓을 했는 지 물었다. 위징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태자가 신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과 같은 화는 없었을 것 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자의 면전에서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의 기개를 높이 평가, 그를 곧바로 군주에게 직언하는 ‘간의대부’에 임명했다. 위징은 모두 200여 차례나 거리낌없는 직언을 했다. 오죽했으면 당태종이 한때 “이 시골 촌놈을 죽여 버리겠다”며 크게 화를 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이 죽을 때까지 중요한 직책을 맡겨 국사를 처리하게 했다. 쓴소리를 잘하는 인재를 마음 속 깊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항우와 유방의 운명도 인재 활용 여부가 성패를 갈랐다. 유방은 공신 장량이나 말단 관리였던 소하는 물론 개백정 번쾌, 장례식장의 나팔수 주발, 남에게 빌붙어 먹고 살던 한신 등을 핵심 참모로 썼다. 유방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것처럼 인재에도 귀천이 없다”며 이들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유방은 “내가 계책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장량에게 미치지 못했고 나라를 다스리고 군량을 전선에 보내는 일은 소하에게 미치지 못했다. 100만 대군을 움직여 싸움에서 이기는데는 한신을 못따라간다”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인재인 ‘범증’조차 의심해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결국 스스로 제 목을 찔러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가나 조직의 흥망성쇠는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기술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획예산처 국장이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나고선 “우리나라에 이런 공무원이 있는 줄 몰랐다”고 주변에 탄복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충신으로 흥하고 간신으로 망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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