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새우잡이 원양어선 마부노 1,2호의 선원(한국인 4명, 외국인 24명)들이 소말리아 연안 해역에서 무장 해적들에게 납치된 지 18일로 157일째를 맞았다. 피랍된 선원들은 현지에서 해적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하고 굶주림에 허덕이며 악몽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부노호의 한석호 선장이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전화 통화에 따르면 해적들이 선원들을 육지로 끌고 가 ‘돈을 내놓으라’며 쇠파이로 때려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한다. 배에 남아 있던 음식이 오래 전 바닥 나 해적들이 건네준 돌과 모래가 섞인 쌀로 연명한다니 그 참상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더구나 해적들이 한국 선원들만 폭행하며 24시간 감시한다고 한다. 심지어 ‘손을 잘라 버리겠다’는 말을 일삼고 선원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총을 겨눈 채 금방이라도 쏠 것처럼 위협한다니 지옥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선장의 부인 김씨는 “아프가니스탄에는 대통령 특사와 국정원장까지 보내면서 생계를 위해 이역만리에 돈 벌러 간 사람들은 이렇게 소극적이니 선원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고 호소한다. 다른 피랍자 가족들의 절규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금 소말리아 해적들이 석방조건으로 요구하는 건 선원들의 몸값(미화 70만 달러)이다. 선원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다. 해적들과 직접 협상을 벌이는 선주 사정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금전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소말리아 사태가 재발생할 우려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너무 미적지근하다. 하지만 탈레반엔 샘물교회 교인 몸값으로 정부가 1천만달러를 건네주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정부 당국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돈을 노리고 납치를 일삼는 해적들을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설 수는 없다. 사사건건 정부가 개입하면 세계 도처에서 한국인들은 납치범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소말리아 피랍 사태 해결도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물밑에서 전문가를 내세워 협상을 하되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피랍된 사람들에게 신분의 차등이 있어선 안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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