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인 3억년 전쯤 생겨났다는 은행나무는 공룡이 이 땅을 지배하던 ‘쥐라기’에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빙하기 때 대부분 멸종됐고 중국 저장(浙江)성 일대의 좁은 지역에서만 겨우 살아 남았다. 지금도 자연생태의 은행나무 자생지는 세계에서 그곳이 유일하다. 수천년 전 우리 땅에서 멸종됐던 은행나무는 중국에서 유학과 불교가 들어오면서 문묘와 향교, 사찰에 한두 그루씩 사람의 손으로 심어져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초등학교 교정이나 관청에 한 두 그루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지금은 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져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은행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은 없다. 은행나무가 우리 땅에선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수 많은 열매를 달지만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스스로 싹을 틔우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일일이 심고 가꾼 세월의 흔적이다.
우리나라엔 전국에 378건의 천연기념물이 있는데 그 중 은행나무가 22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대략 수령이 천년 정도된 ‘노거수(老巨樹)’들이다. 천년 세월도 그렇지만 자태도 빼어났다. 은행나무 노거수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을 따르자면 수령이 1천100살이다.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것은 충남 금산의 진악산 자락 보석사의 은행나무다. 보석사 창건 당시 심었다면 나이가 1천80살로 추정된다. 강원 원주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80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청춘이다. 가지가 넓게 퍼져 높이보다 폭이 더 넓어 그 가지마다 빽빽하게 은행잎이 달린다. 나무의 모습이 범상치 않은데 나무를 지키는 흰뱀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깃들었다. 영월읍의 1천년 된 은행나무에도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곤충이나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이 은행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보살펴준다는 전설이 있다. 충북 영동의 천태산 자락에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는 35m의 높이로 뒤편의 절을 온통 가리고도 남는다. 충북 괴산의 읍내리 은행나무, 충남 금산 요광리 행정의 은행나무, 부여 녹간 마을의 은행나무 등도 유명하다. 가을 이맘 때 은행나무를 바라보면 사람의 가슴도 노랗게 물든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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