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54년 8월 16일 사람이 관리하는 유인(有人) 공중전화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8년 뒤 동전을 투입하는 공중전화기가 설치됐고 이후 공중통신망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공중전화가 사라져가는 나라이기도 하다. 도시지역의 낡은 공중전화 부스가 경관을 해친다며 철거를 요청하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 상가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적지 않다. 공중전화 부스를 뜯어낸 자리에 은행현금자동입출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도심을 벗어나면 공중전화 찾기도 어렵다. 물론 휴대전화 가입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구 고령화로 70, 80대 노인은 물론 중·고교생까지 대부분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해 공중전화는 애물단지 신세가 돼버렸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일 년에 한 차례도 공중전화를 쓰지 않을 정도로 통화량이 줄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접을 수는 없다. 공공성이 강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KT 자회사로 공중전화 사업을 하는 KT링커스가 문자메세지(SMS) 발송 기능이 있고 교통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는 신형 공중전화기를 올해부터 매년 1만 대씩 보급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전국에 보급한 신형 전화기는 고작 120여대 분이다. 그것도 지난주에야 설치했다. 내년 설치 계획은 아직 잡지도 못했다. 대신 기존 카드전화기 2만 대를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하게 개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신형 전화기 제작 공정에 문제가 생겨 생산이 원활치 않아 보급이 늦어지고 있다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신형 전화기의 보급 예산을 제대로 학보하지 못했다. 적자를 내는 사업에 돈을 들일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중전화 통화료를 3분당 70원에서 100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공중전화 사업이 맥을 못 추기 시작한 것은 이동전화 가입자가 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다. 1997년 43만 대이던 공중전화 보급 대수는 현재 22만 대로 줄었고, 매출액도 2001년 3천406억원에서 지난해 말 784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 적자 규모는 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이 공중전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사업 자체를 포기할 순 없다. 공중전화 부스 밖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던 모습도 이젠 추억 속의 풍경이 됐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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