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흑심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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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흑심(厚顔黑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과 어울려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도 없이 행동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말이 남들의 눈치와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불굴의 열정과 용기를 발휘하는 적극적인 마인드로도 활용된다.

명분과 예의, 염치를 중요시 여기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중국 역사를 보면 영웅호걸이나 최후의 승리를 얻은 인물들은 거의 명분과 자존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아니라 후안흑심의 사람이었다.

후안흑심의 후안은 방패다. 100만명이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정말 단단한 후안의 방패를 가진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와 체면에 얽매이지 않았다.

한나라 유방은 무릎을 꿇고 거짓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원할 줄 알았던 후안을 가진 사람이었다. 심지어 경쟁자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는 오히려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던 낯가죽 두꺼운 사람이었다.

‘삼국지’의 유비 역시 후안의 대가였다. 유비는 목적을 위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눈칫밥을 먹어도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동가식서가숙’의 대가였고, 급한 일이 생기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무시로 대성통곡하여 살길을 찾았던 표정관리의 대가였다.

후안흑심의 흑심은 창이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을 동정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이 창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로지 목표에 집중하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이 이 창을 가질 수 있다. 간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조조는 승리를 위하여 가차 없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동정심을 극복하여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의 개척자들은 이 후안흑심을 지녔기에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 수 있었고, 아시아의 잘 나가는 화교 사업가들 역시 이 후안흑심의 마인드로 엄청난 성공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후안과 흑심이 성공의 열쇠라고 해도 회한은 남는다. 후안흑심으로 상대방을 이겼다고 그 승리가 진정한 승리는 아니겠다. 후안흑심으로 이긴다면 승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아름다운 승리라고 할 순 없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모두 후안흑심 소유자들로 보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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