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감정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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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글씨를 쓸 때 처음 시작하는 부분과 끝무리의 형태, 기재방향과 각도, 필획간의 연결위치와 간격, 배자(配字)형태, 특정 획을 쓰는 방법, 필기구를 누르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고 한다. 서명의 경우 모방을 했다면 글씨체가 유연하지 못하고 미세한 떨림이나 주저한 흔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사본이 아닌 원본을 확대해서 살펴보면 유서를 대필했거나 서명을 위조했더라도 한 개인이 친필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특징을 찾아내 진위 여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사람이 40년 동안 일기를 썼을 때 글씨체가 전혀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시기별로 글씨체가 상당히 변하는 사람이 있으며 필기구로 무엇을 사용했는지, 속필인지 정필인지 글씨를 쓸 때 자세와 심리상태가 글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필적감정 전문가들은 글씨를 비교했을 때 보통 유사점이 70% 이상이면 같은 사람이 썼다고 보고, 45% 이하면 위조했다고 보는데 문제는 45~70% 사이란다. 유사점과 차이점이 비슷하게 섞여 있거나 대조물의 조건이 상이할 땐 판정불능을 내린다. 필적감정원에 의뢰하는 사건 대부분이 과거에 서명을 해놓고 자신에게 불리하니까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서명을 위조한 사람도 있지만 이는 감정해보면 꼭 티가 난다고 한다.

이른바 ‘BBK 의혹’과 관련, 검찰이 이명박 대선 후보의 친필서명 제출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자 한나라당이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거부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그제 KBS 초청토론회에서 “당이 어떤 방침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확인하려면 (내가)확인해 줘야 한다”고 친필 서명을 제출키로 했다. 정면돌파 차원에서도 매우 적절한 대처방법이다. 대선 후보를 보호하려는 한나라당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친필 서명 제출 거부는 괜한 오해만 살 당론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서명과 평소 필체는 이미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필적감정을 통해 진위여부를 충분히 가릴 수 있다고 한다. 국립과학연구소도 “다양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내린다”고 했으니까 곧 판명날 터다. 누가 시커먼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을까.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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