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

실루엣(silhouette)은 프랑스 말이다. 윤곽 안이 검은 측면화상, 검은 반면(半面)영상을 말한다. 그러나 원래는 사람 이름이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한 것이다. 프랑스의 재정가 실루엣(1709~1767)이 재무상이 된 것은 1759년으로 루이 15세 치세다. 당시 7년전쟁으로 극도의 재정위기에 처했던 터라 국고를 늘리는 것이 시급했다. 수입 증대 방안으로 세금 중과를 위한 세제개혁을 서둘렀으나 그 무렵 이의 승인권을 가진 대법원이 번번이 불허했다. 그러자 마침내 귀족, 승려 사원 등의 면세특권을 폐지하고 시민에게도 각종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세제를 독자적으로 강행했다. 이 바람에 ‘인간이 숨쉬는 공기에 대해서까지 공기세를 물릴 것’이라는 평판이 나돌았다.

지출면에도 극도로 절약해 왕실의 내탕금을 줄인 것은 좋았으나 시민들에게 과도한 절약생활을 강요했다. 예컨대 초상화를 그리는데 많은 돈을 들여 전면을 다 그리기보다는 값싸게 얼굴의 특징을 옆얼굴로 나타내는 그림자그림, 흑색반측면상으로 그리도록 하는 법규를 정했다. 사진술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이다. 사진 기술의 원리가 발명된 건 비슷한 시기인 1723년이었으나, 실용화로 보급된 것은 100년도 더 지난 1839년이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명사화한 실루엣이란 말이 복식분야에서도 쓰이는 점이다. 옷의 라인, 스타일, 루크와 함께 유행형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된다. 옷의 무드나 세부에 관계없이 전체적인 외형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 스포츠의 사격에선 실루엣경기에 쓰이는 높이 160㎝ 폭 45㎝의 전신입상 흑색판 표적을 ‘실루엣 표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루엣은 결국 귀족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얼마 뒤에 실각, 그가 강조했던 그림자그림처럼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막강한 권좌에서 물러난 그를 가리켜 프랑스 계몽기의 문학가 볼테르는 “독수리가 변하여 볼품없는 거위가 됐다”고 말했다. 권좌에서 물러나 덧없는 세월을 보내는 걸 두고 ‘실루엣그림자’란 말이 또 나온 게 이에 연유한다.

여러가지 뜻을 나타내는 실루엣 말 가운데 특히 생각되는 것이 ‘실루엣 그림자’다. 노무현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 끝까지 대못질에 혈안이었던 사람들이 불과 서너달 뒤 권좌에서 물러난 뒷모습이 어떨지 두고 보고싶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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