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테이너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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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많은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폴리테이너로 나서왔다. ‘폴리테이너(politainer)’란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이나 정계에 직접 진출하지 않더라도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연예인을 뜻한다. 1999년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처음 사용했다.

한국에선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활약한 문성근, 명계남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노 후보를 지지했던 명계남씨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연예인은 의식 있는 딴따라” “노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연예인과는 종자가 다르다”는 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예인들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명세가 ‘먹히기’ 때문이다. 얼굴이 잘 알려진 연예인들을 각종 행사에 동행하면 자연스럽게 유권자의 시선을 끌 수 있고, 후보의 이미지까지 친숙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욕도 작용한다. 정치판에 줄선다는 건 권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고, 인맥을 넓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지지하는 후보의 당락에 따라 폴리테이너의 명암도 갈린다.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가수 김흥국씨,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뽀빠이 이상용씨는 숱한 고생을 겪었다. 이 후보를 따라 다녔던 트로트 가수들도 다 출연줄이 끊기는 피해를 봤다.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장관도 되고 방송에도 잘 나갔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상도 다 휩쓸었다. 이번 17대 대선 이명박 후보 캠프엔 80여명의 연예인들이 몰렸다. 그들 가운데 탤런트 백일섭씨가 ‘이회창 출마규탄 대회 및 필승결의 대회’에 참석, “이회창씨 하는 짓거리는 뒈지게 두드려 맞아야 할 짓거리”라며 “(이 후보는) 밤거리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 뒈지게 맞기 전에…”라고 했었다. 그러고도 백씨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별뜻 없이 웃자고 한 말인데 문제가 커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저질 폴리테이너가 따로 없다. 이회창씨는 이래 저래 욕을 먹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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