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공방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스탈린 지지파와 반대파 간의 알력이 극심했다. “트로츠키 동지, 당신은 훌륭한 두뇌를 가졌지만 그게 바보의 몸위에 놓여있군요!” 한날 정치국원 회의서 격론 끝에 스탈린 지지파 루즈타크가 반대파인 트로츠키를 비아냥거린 말이다. 그러자 트로츠키가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의 말씨가 당신의 능력보다 낫구려!” 정치국의 알력은 피의 숙청을 가져왔을 만큼 살벌했었다.

요즘 대선 싸움의 말씨가 피의 숙청을 이룬 소련 공산당 정치국 싸움 말씨보다 졸렬하다. 일일이 예를 들 것도 없다. 공격해도 기지와 해학이 있어야 품격이 있다. 그런데 대선판은 욕지거리다 못해 음해성으로 간다.

미국 하원의 공화당 다선 의원이 시골에서 수의사를 하다가 당선되어온 민주당 초선의원에게 물었다. “전직이 수의사라지요?” “예! 그렇습니다. 어디 불편한 데가 있습니까?” 초선의원의 대답이다. 딴은 골탕 먹인다고 말한 것이 되레 자신이 동물로 비유되는 골탕을 먹은 것이다.

명품시계 시비는 재치도 익살도 없는 음해성 공방의 하나다. 시계를 말하자니까 생각되는 것은 지금은 흔한 게 시계지만 예전엔 귀중품이던 때가 있었다. 그 가운데 회중시계는 양복 조끼에 넣어두는 몸시계로 조끼 단추구멍에 고리를 낀 시계줄만 보고도 신사중 신사로 쳤다.

그런데 아돌프 히틀러의 일화가 있다. 어느날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과 있다가 심야회의에 지각하게 됐다. 그러자 지각한 5분을 미리 분침으로 되돌린 회중시계를 참모들에게 보여주고는 바닥에 내던져 깨버렸다. 단 5분이지만 시간을 어긴 체면을 그렇게 살린 것이다.

명품시계의 발단은 김현미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부인이 찬 시계가 프랭크 뮬러로 1천500만원짜리 고가품이라고 공식 발표한데서 비롯됐다. 이에 이 후보 부인은 7만원짜리 국산 로만손 시계라며 김 대변인에게 1억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및 위자료청구소송을 며칠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 후보 부인은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녔던 게 도덕성 시비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이 후보는 사실을 시인하며 사위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산 시계가 스위스 명품과 비슷하여 명품 핸드백에 이어 명품시계 공세를 또 벌인 착각을 했는 지 모르지만 공방이 치졸하다. 시계가 흔한 가운데도 천오백만원짜리 시계가 있다니 놀랍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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