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를 이룩한 종교개혁의 마르틴 루터가 1517년 면죄부 판매 등 여러가지로 부패한 교회의 개혁을 촉구, 비덴베르크교회 대문에 내붙인 ‘95개조의 고백’이 플래카드(Placard)의 효시로 꼽힌다.
프랑스 말로 벽에 맨 선반의 뜻이던 플래카드가 구호 등을 외치는 현수막 등 선전물로 바뀐 것은 ‘95개조의 고백’이 있은지 17년뒤 파리 왕궁에서 발생한 이변으로 시작됐다. 그러니까 1534년 10월17일 밤 파리 시가지는 물론이고 프랑수아 1세의 침실 출입문에까지 당시의 교회 타락상을 비난,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선전물이 나붙은 소동이 일어나 이를 ‘플래카드 사건’으로 부른 데서 유래된 것이다.
프랑수아 1세는 신성로마 황제 칼 5세에 대항한 이탈리아와의 전쟁속에서도 내치에 힘써 후세에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린 사람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에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가 ‘플래카드 사건’을 계기로 반종교개혁의 입장을 취했다. 이것이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에 일어난 격렬한 종교전쟁의 발단이 되긴 했으나, 오늘날 프랑스가 가톨릭 교도가 많은 나라가 된 게 프랑수아 1세의 그같은 단안에서 비롯됐고 ‘플래카드 사건’이 발단이 된 것이다.
왕권시대의 산물인 플래카드가 민주주의시대에 넘쳐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다만 다른 것은 왕권시대에는 은밀한 배후수단이었던 것에 비해 민권시대에서는 당당한 발표수단으로 전환된 사실이다.
집회의 자유가 있고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는 다원화사회다. 절대적 지배의 독재주의는 단원화사회로 지배자 1인에 귀속된 목소리 뿐인데 비해, 다원화사회는 상충되는 여러가지 목소리가 나온다. 이래서 서울시청앞 광장이나 여의도광장 등에선 각종 집회가 열릴 때마다, 또 가두시위를 벌일 때마다 갖가지 구호가 적힌 형형색색의 플래카드가 넘실거리곤 한다.
제17대 대통령선거를 맞아 플래카드가 전국의 방방곡곡에 나붙어 눈길을 끈다. 선관위에서 붙이는 대통령 후보군 사진 벽보도 일종의 플래카드다. 후보가 12명이나 되어 플래카드가 참 길기도 하다. 각 후보 진영에서 내거는 여러가지 내용의 현수막 역시 플래카드다.
대통령 선거 플래카드를 훼손하면 법에 의해 징역 4년 이하 또는 벌금 400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돼 있다. 법이 아니더라도, 보기싫은 사람이 있거나 다 보기싫거나 간에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민주시민의 소양이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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