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사랑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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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39세의 ‘여간첩 김수임’은 6·25 전쟁 발발 9일 앞둔 1950년 6월 16일 다섯 발의 총탄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장을 지낸 이강국을 사랑했고, 미8군 사령부 헌병감이었던 군정의 실세 베어드 대령과 동거했던 김수임은 베어드 대령에게서 빼낸 고급 군사정보를 이강국에게 넘겨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에 관한 역사는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억울한 죽음’ 쪽으로 수정되고 있다. 특히 군사재판 시작 사흘 만에 내려진 사형 판결, 김수임의 간첩 행위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베어드 대령에 대한 무혐의 처분 등이 이데올로기의 시대, 분단의 시대를 위태롭게 살았던 그녀를 재조명하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

얼굴이 희고 훤칠했던 경성제국대학 출신 이강국과 이화여전을 졸업한 신여성, 김수임. 그녀의 죄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으며 기꺼이 그 책임을 지겠다”며 그녀가 목숨 던져 사랑했던 이강국도 5년 뒤 북한 땅에서 박헌영과 함께 간첩죄로 처형됐다.

재미교포 출신의 여성 군수물자 로비스트인 ‘린다 김’은 1996년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이 보낸 세 통의 핑크빛 연서를 받았다. 김씨의 경우 사건의 본질보다 미모의 로비스트와 국방장관,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인해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김씨가 군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인 ‘백두사업’ 팀장에게 제공했던 뇌물이 1천만원에 불과한 것만 봐도 그렇다. “로비스트는 현재에 사는 법. 나는 과거는 말 할 수 있지만 현재는 말하지 않는다”는 김씨가 “(신정아가) 제 2의 린다 김이라니, 신정아 사건과 내 사건이 어떻게 같으냐”고 항변했었다.

학력으로 사람과 능력을 평가하는 시대적 부조리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예일대 박사 출신 명문 미술관 큐레이터’로, 대학 교수로 화려하게 활동했던 신정아씨가 며칠 전 재판을 받았다. 위조한 학력으로 문화권력을 만끽한 그녀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연인 관계가 맞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 “변양균 실장 정도가 배후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던 신정아씨가 말한 사랑의 실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여간 남녀의 사랑은 복잡다난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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