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옛 중국의 제나라 위왕을 섬긴 순우곤은 키카 오척단구다. 몸집은 왜소했으나 담대하고 언변에 익살이 풍성했다.

위왕이 위에 오른지 3년이 되도록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허송세월하는데도 간언하는 신하가 없었다. 보다못한 순우곤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임금께선 나라에서 가장 큰 새가 궁정뜰에 날아와 3년이나 머물며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위왕은 한참 있다가 결연한 자세로 가다듬어 대답했다. “그 새가 날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일단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것이며, 울지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일단 울었다하면 뭇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 신하에 그 임금이었다. 크게 깨달은 위왕은 제도를 정비하고 문물을 일으켰다. 초나라의 공격을 받았을 땐 순우곤이 조나라를 찾아가 10만 원군을 데려오는 수완을 보여 이를 본 초군이 그만 물러갔다.

어느 날 연회에서 위왕이 순우곤에게 “경의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하고 물었다. 호주가라고 소문난 그가 연회 자리에선 별로 마시지 않아 궁금했던 것이다. 순우곤의 대답은 이랬다. “높은 분들 앞에서 마시면 한되 술에도 취하고, 친구들하고 마시면 한말 술에 취하나, 저녁 때 정인하고 마시면 한섬 술은 마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 골계열전에 전한다.

순우곤의 그같은 주량은 술마시는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다. 술꾼이라면 능히 이해가 가고 또 사실이 그러하다. 술 좌석의 분위기에 따라 술이 먹히고 안 먹히곤 하는 것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술 좌석은 술만이 아니고 기분을 마시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은 기분좋게 마신 것 하고, 할 수 없이 마신 것 하고 다른 게 바로 몸의 컨디션에서 나타난다.

술 자리가 잦은 연말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이렇게 저렇게 서로 갖는 망년회가 많고 또 으례 술을 마시기 마련이다. 기분좋은 술자리가 돼야 하는 것은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함보다는 몸의 건강을 위해서다.

술도 소중한 음식이다. 허물없는 사이일지라도 기본적 예의를 지키고, 덕담을 많이 나누는 음주문화의 건전화가 좋은 모임의 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 해의 괴로움을 잊기로하는 좌석에서 새로운 괴로움이 생겨서는 망년회의 본 뜻이 아닌 것이다./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