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문지가 배달되어 오는 날이면 절망한다. 말을 모르고 외국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거기에 실린 시들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다. 시를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어떤 것은 그 난해성 때문에 쉽게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소위 잘 나가는 시인과 평론가들로 가득한 시 전문지에 실려 있는 어뗜 시들로 인해 나는 시의 문맹자가 되어 버린다.
(중략) 시는 나의 구원이었다. 시를 쓰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변화로 인해 나는 가끔씩 졸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가 내 정신적 구원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않았던 갈증으로 점점 목이 탔다. 앞으로 그 갈증이 다소나마 해소될지 더욱 목이 탈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를 쓰는 것은 나의 숙명이고 마지막 한 편은 미완성인채 남겨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글씨 끝에 나의 펜이 멈춰져 있을테니 말이다.”
올해 초 발간된 박건호 시인의 세 번째 에세이집 ‘나는 허수아비’에 실린 ‘시의 문맹자’ 가운데 처음과 끝 부분이다. 난해하게 흘러가는 한국 현대시, 난해해야 좋은 시로 착각되는 한국시의 사조(思潮)를 비판한 글이다. 박건호 시인은 20세 때인 1969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서문이 실린 첫시집 ‘영원의 디딤돌’로 문단에 나섰다.
이후에도 ‘타다가 남은 것들’ ‘물의 언어로 쓴 불의 시’ ‘나비전설’ ‘모닥불 이후’ ‘유리 상자 안의 신화’ ‘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 ‘그리운 것은 오래 전에 떠났다’ 등 시집을 출간했다.
1972년 ‘모닥불’을 발표하면서 작사가의 길을 걸어온 박건호 시인이 지은 노랫말은 3천곡이 넘는다. ‘내 곁에 있어주’ ‘잊혀진 계절’ ‘아! 대한민국’ ‘오직 하나뿐인 그대’ ’슬픈 인연’ ‘단발머리’ ‘모나리자’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토요일은 밤이 좋아’ ‘빈 의자’ 등 국민애창곡이 박건호 시인의 작품이다.
1989년 수족 마비와 언어장애를 부른 갑작스러운 뇌졸중을 앓았으며 신장과 심장 수술도 했으나 그야말로 주옥같은 시와 노랫말을 짓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1949년 원주에서 태어난 박건호 시인이 9일 오후 10시 30분 향년 58세로 별세했다. 그리고 12일 이승을 떠났다. 친구의 명복을 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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