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총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오는 3월 대통령선거에서 통합러시아당의 후계자로 지명한 게 지난 10일이다. 이에 메드베데프는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푸틴을 차기 정부의 총리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푸틴은 17일 당대회에서 메드베데프의 총리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공식 표명했다.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다.

전직 대통령이 후계자 밑에서 총리를 하겠노라며, 세계 어느 나라 정치사에도 없는 이변을 자청하고 나선 푸틴의 처신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야망이다. 푸틴은 지난 2일 치른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 비례대표 1번에 올라 60%가 넘는 지지율로 당을 압승시켰으므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푸틴 총리’ 시나리오는 헌법의 3선연임금지를 뛰어넘는 러시아판 꼼수다.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 대통령 밑에서 실세 총리를 하다가, 어느 시기에 후계자 대통령을 사퇴시킨 대통령 보궐선거에 출마하면 3선연임이 아니라는 해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3선중임’ 금지가 아닌 3선연임 금지란 데 그같은 해석의 함정이 있다. 푸틴은 3선연임 철폐 개헌, 내각제 개헌 등 여러가지 집권 연장 방법을 궁리끝에 총리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라스푸틴은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인 알렉스산드라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은 괴승이다. 대신의 임면, 중죄인의 처벌 등 내정만이 아니고 외교에까지 간섭하여 니콜라이 2세를 허수아비 황제로 만들어 무소불위의 권능을 휘둘렀다.

푸틴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도 실세 총리의 국가지도자로 후계자인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 것이고, 메드베데프 역시 이를 모르지 않고 푸틴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당수 등도 출마할 것이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푸틴의 후광을 업은 메드베데프의 당선이 유력하다. 푸틴에 대한 이런 국민적 지지는 경제를 살린데 기인한다.

경제를 살린데 대한 국민적 지지는 좋지만 ‘푸틴총리’ 시나리오는 아니다. 러시아판 야바위 정치가 다른 자유민주주의 후진국에 혹시 전염되지 않을까하여 우려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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