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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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남녀 간 사랑의 가장 이상적 모델로 지칭된다. 두 남녀의 주관적 사랑의 관념이 어느 순간 ‘객관화되어’ 결혼에 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순간의 사랑은 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순간이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수십년 동안 올곧이 이어지긴 어렵다. 사랑의 의미가 변할 수도 있고 의미는 변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방법이나 태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에 따르면 사랑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가 그것이다. 에로스는 흔히 성애적 사랑이라고 하는데,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성에 대해서 느끼는 육체적 욕망에 기초한 사랑이다. 자기에게 없는 것, 즉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이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에로스는 그 자체가 자연적이다. 필리아는 친구애, 우정, 동료애로 번역된다. 동등한 인격체들 간의 배려와 인정을 기초로 한 사랑이다. 상대의 존재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우리말의 배우자(결혼한 남녀)간의 사랑을 말한다고 하겠다. 즉 동반자로서 서로의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랑을 말한다. 아가페는 초월적인 사랑, 그 예로 신의 뜻, 모성애를 많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의 구분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누구는 에로스만 하고 누구는 필리아나 아가페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 가지 사랑은 한 개인이 평생에 걸쳐 가지는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두 남녀는 에로스로 맺어진 다음, 필리아로 사랑의 의미와 방법을 바꾸면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는 아가페를 실천한다. 우리 사회의 부부 관계는 에로스이후를 알지 못했거나 그에 대한 의의를 찾지 못했다고 하겠다.

에로스, 필리아는 알겠지만 아가페가 부부사이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컨대 알츠하이머에 걸린 배우자를 돌보는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최근 늘어나는 이혼 사례는 사랑의 의미와 의의가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나이에 따른 사랑의 의미 변화를 너무 경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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