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중독증

이번 제17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등록한 12명 가운데 9명의 공탁금 45억원이 국고로 귀속된다. 법정 득표율 15%에 미달한 후보는 중앙선관위의 선거운동비 보전에서 제외될 뿐만이 아니라 5억원씩 낸 공탁금도 국고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 9명은 창조한국당 문국현(5.8% 137만5천498표) 민주노동당 권영길(3% 71만2천121표) 민주당 이인제(0.7% 16만708표) 경제공화당 허경영(0.4% 9만6천756표) 한국사회당 금민(0.1% 1만8천223표) 참주인연합 정근모(0.1% 1만5천380표)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0.0% 7천161표) 외에 중도에 사퇴한 심대평(국민중심당) 이수성(국민연합) 등이다. 무소속의 이회창(15.1% 355만9천963표)은 법정 득표율 15%를 간신히 넘겨 공탁금 5억원을 돌려받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오래 전에 대구서 언론계 선배 중 한 분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해서 극력 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선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 생각해봐라,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하며 거명됐던 사람들을 평하면서 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명된 인사 가운덴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도 포함됐다.

이윽고 후보등록 마감일 오후가 되어 하필이면 지지대子 더러 등록하러 가라고 하여 거절했더니 “니는 내가 국회의원 되는 게 그렇게 샘나느냐”며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등록하러는 가도 선거운동은 안 한다는 조건으로 지프를 타고 가는데, 선관위에 낼 기탁금 현찰이 수북한 게 날려버릴 것이 뻔해 영 아까운 것이다. 그는 현찰 관리에 내가 미덥다고 여겨 시켰지만, 단 몇시간만 어디 가서 넘겨 등록 마감이 지나면 이 돈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으나 등록을 마쳤다. 결과는 역시 형편없는 낙방으로 끝났다.

그 때 생각한 것이 입후보 중독증에 한 번 빠지면 구제난이란 것을 터득했다. 곁에서 출마를 충동질하는 선거꾼들의 꾀임이 또한 여간 아니다. 그 선배도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닌데 그만 바보가 되는 것을 보았다.

이번 대선에서 5억원을 날릴 생각으로 출마한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도 입후보 중독증이다. 국고에 희사하는 것은 좋지만 선거판을 희롱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참정권의 자유를 농락하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